[올림픽 축구 결산]'투혼의 축구' 한계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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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올림픽 축구 본선 8강 문은 시드니에서도 열리지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래 네차례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것으로 만족하기에는 시드니 올림픽 8강 진출 꿈이 너무 허망하게 무산됐다.

예선 1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끝에 스페인에 3-0 패배를 당하자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축구는 아시아에서도 3류"라는 치욕적인 평가까지 나왔다.

개인기 부족·단조로운 경기 운영·불리한 신체조건 등 어느 것 하나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한국 축구의 현주소가 이번 올림픽에서 드러난 셈이다. 허정무 감독조차 스페인전 직후 "힘·스피드·테크닉이 모두 딸려 속수무책이었다"고 탄식했을 정도다.

평가해줄 부분도 있다. 칠레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천수가 경고로 퇴장당한 가운데서도 1-0으로 승리한 것은 '한국 축구의 투혼'을 발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 드러났듯 기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승부욕만으로는 더이상 세계 무대에서 설 자리가 없다. 한번 조직력이 무너지자 상대 선수와 1대1 상황에서 어이없이 돌파당하는 스페인전이 단적인 예다.

조윤환 부천 SK 감독은 "선수들의 개인기가 딸리다 보니 경기운영에서 매끄럽지 못한 장면이 속출했다"며 "선진 기술축구의 국내 접목이 시급했다"고 말했다.

중요한 '대사(大사事)'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강팀인 유고·나이지리아를 국내로 불러들여 잘 싸우고서도 정작 올림픽 본선에서는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신문선 MBC 해설위원은 "평가전에 열을 올리다 보니 홍명보·박진섭 등 핵심 전력이 부상하는 등 전력을 제대로 활용치 못했다"고 말했다.

92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아무 타이틀도 걸리지 않은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이 부상, 본선에선 뛰지도 못했던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한 셈이다.

한국 축구의 '반면(反面)고사'는 가장 가까운 데 있을 수도 있다.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여기던 일본은 숙원인 올림픽 8강에 32년 만에 재진입했다.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올림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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