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기업이 투자해야 일자리가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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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과 재계 대표들이 어제 간담회를 열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해 30대 그룹이 87조원의 투자계획을 세웠고, 신규 채용은 7만9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투자는 16.3%, 고용은 8.7% 늘려 잡은 수치다. 삼성그룹은 사상 두 번째 규모의 투자를 할 계획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계획보다 투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 빙하기에 모처럼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일자리 창출을 최고 국정 목표로 내건 이 대통령은 “과감한 투자계획 발표에 고맙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새해 벽두마다 대통령이 대기업을 모아놓고 투자를 독려하는 게 썩 좋은 그림은 아니다. 기업 투자는 정부의 압박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우리 사회를 괴롭혀온 게 사실이다. 기업 투자의 상당 부분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최근 이런 분위기가 반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확실히 거머쥐기 위해 잇따라 공격 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기업의 발목을 잡았던 노사관계도 급변하고 있다. ‘떼쓰기 파업’은 사라지고 법과 원칙이 되살아나고 있다. 정부와 기업, 노조가 손을 잡고 재도약을 해볼 만한 새로운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투자 확대 없이 경제의 선순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해외에 치우쳤던 투자는 국내로 U턴시켜야 한다. 그동안 새해 벽두의 야심 찬 투자 청사진들이 물거품이 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해는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전경련은 향후 8년간 국내에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300만 일자리 창출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무르익은 투자 분위기를 북돋우려면 정부와 정치권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 고용 창출과 노동의 유연성을 저해해온 낡은 제도들은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보다 다양한 근로 형태를 허용하고, 서비스업의 진입 장벽은 대폭 낮춰야 한다. 그것이 여성·청년층의 일자리를 늘리는 지름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