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만강' 김일성이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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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969년 수령께서는 창작실천에서 오류를 범한 작가들과 결함있는 일부작품의 처리문제와 관련해 당일꾼의 보고를 듣고 '비판이 있다고 하여 그 사람이 쓴 작품을 반드시 회수하는 것은 말아야 한다’하시면서 내가 쓴 '두만강’3부에 대해서 '소설 두만강 3부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회수하여 개작하자는 제기가 있는데 그대로 두는게 좋겠다’고 말씀하시었다...”

해방 이후 북한문단을 이끌었던 민촌(民村) 이기영(李箕永)의 대하소설 '두만강' 이 1969년 당비판을 받고 회수될 뻔했으나 김일성이 이를 무마해준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민촌은 60년대 후반 북한문단에 닥친 대규모 숙청바람 속에서 재.월북작가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72년에는 조선문학예술총연맹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월간중앙' 이 중국 옌볜(延邊)에서 입수한 그의 자서전 '태양을 따라' 에서 밝혀졌다.

'월간중앙' 은 자서전과 함께 민촌의 미공개 사진 10장도 함께 입수했다. '태양을 따라' 에는 특히 민촌 일가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각별한 관계가 곳곳에 눈에 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민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고향' 집필을 33년 북간도 여행중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활동내용을 접한 뒤에 결심했다는 대목.

그는 당시 북간도에서 활동했던 여류작가 강경애와 현경주의 초청으로 룽징(龍井)을 방문했다 강경애의 남편이자 해방후 북한 로동신문 부주필을 지냈던 장하일로부터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활약상을 전해듣고 "큰 충격과 함께 작가적 흥분에 사로잡혔다" 고 고백하고 있다.

자서전에는 또 55년 김일성이 민촌에게 마련해준 '석암창작실' 에 대해서도 소개돼 있다. 이 별장은 평양에 접해있는 순안군(지금은 평원군에 편입) 석암리 견룡저수지 주변에 있다.

58년에는 전후 수도건설을 위해 2만세대 조립식 주택건설사업에 참가하고 있던 학생 김정일이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사실도 공개했다.

김정일위원장은 민촌의 3남인 종륜(種倫.59)과 죽마고우로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서전에서 민촌은 52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칠레의 혁명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만난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민촌은 네루다 앞에서 김일성과 자신을 부자(父子)관계에 비유하면서 김일성이 자신에게 선물했다는 회중시계를 자랑하고 있다.

자서전은 장편 '고향' 의 후반부 원작자가 민촌 자신임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김기진은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고향' 과 관련해 민촌이 카프2차사건으로 구속수감된 뒤 나머지 30여회분 분량은 자신이 썼다고 주장했었다.

원광대 김재용 교수(한국문학부)는 이 자서전에 대해 "한국 근대문학가들이 부분적으로 문단 회고록을 남겼지만 이렇게 완결된 문학적 자서전을 쓴 경우는 드물어 근대문학사 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 같다" 고 평가했다.

2백자원고지 1천5백장 분량의 이 자서전은 민촌이 작고한 뒤 84년 유고집으로 발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는 그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자서전은 최근 북한의 종이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국 옌볜의 한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입수된 것이다.

김홍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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