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경제 어떻게 되는 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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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야당 총재가 국회의원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해도 무덤덤한 사람들, 경의선 복원 기공식 날짜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상영시간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 의료보험 통합이 몇년 뒤에 어떤 망령으로 다가올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당장 약 한 봉지 타려다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

*** "정책기조 과연 옳았나"

관심.재미.이해가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요즘 모이기만 하면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경제, 이거 어떻게 되는 거요?" 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몇시간씩 이야기를 해봐도 '누구나 동의하는 ' '만병통치' 의 종합처방전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지난 8.7개각 때 요직으로 옮겼거나 입각한 장관들도 막상 책임을 맡고 나자 요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들린다.

개각을 하고 나니 경제는 점점 더 꼬여 가는데 인사권자가 "지금까지의 개혁엔 큰 잘못이 없다" 고 한 상황에서는 전임자들의 정책기조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고 다만 미진했던 부분들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것을 거듭 강또?밖에 달리 큰 묘책이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냥 고' 다.

공적자금 투입이나 에너지가격 인상 추진 등 전과는 다른 정책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단추를 새로 꿰는' 정책전환은 눈에 띄지 않고, 그러니 계속되는 "경제, 어떻게 되는 거요?" 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도 나오지 않는다.

하기야 '단추를 새로 꿰는' 정책을 결심하고 실행하기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끌고온 정책기조도 전에 해보지 않았던 거대한 경제실험이었지만, 지금 와서 그를 뒤집는다는 것도 겪어보지 않은 실험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즘의 "경제, 어떻게 되는 거요?" 는 그저 주가가 떨어지고 유가가 오르는 것에 대한 단순한 불안 때문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는 "그간의 경제실험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라는 훨씬 깊고 무시무시한 의문이 깔려 있다.

어떤 의문들인가.

우선 "위기는 과연 극복됐는가" 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경제위기는 완전히 극복됐다" 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총선을 앞둔 정치적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고 이후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비.노사.공공부문.국회를 들여다보면 사회적.정치적 해이가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음이 보인다. 추가 공적자금 투입 여부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위기가 다 극복됐다는데 새로 30조~40조원이, 그것도 긴급히 들어가야만 한다는 소리를 정부 안에서 누가 꺼낼 것인가.

과거 정권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면 이번 정권에서는 허리띠를 너무 일찍 푼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래서 나온다.

그리고 5년 단임제에서 집권 후반기의 치적과 정치일정을 생각하면 남북관계 개선 등을 서두르기 위해 경제위기의 극복도 '서둘러 필요'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도 이어진다.

여기에 최근의 금융시장은 "그간의 경제기조는 과연 옳았는가" 라는 더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 더 늦기 전에 대안모색을

그간의 경제기조는 큰 부실정리의 위험을 시간을 두고 흩어놓는 것이었다. 국민경제가 충격을 감당해내기 위해서.

여기에 대해 최근의 시장이 정면으로 던지는 의문은 "역시 떨어버릴 부실을 그때그때 떨고 왔어야 하는 게 아니냐" 는 것이다.

금융시장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자 "그때 떨었으면 지금쯤은 새 살이 돋지 않았겠느냐" 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우는 결국 돈을 먹는 블랙홀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누구의 눈에나 보이고, 금감위가 자꾸 내놓는 이른바 '신상품' 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이제 '오물을 치우지 않고 살짝 흙으로 덮고 넘어가기' 다.

경제에 치명적인 도덕적 해이는 박건배(朴健培)전 해태그룹 회장의 구속 등으로는 바로 잡히지 않으며 쓰러지고 손해를 봐야 비로소 잡히지 않겠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그러니 "위기는 다시 오는가" "경제의 자생력은 있는가" "남북이나 정치일정을 감당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의문은 물론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이다.

달포 전 새 경제팀이 들어서면서 진작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할 의문이지만 시장상황이 더욱 나빠진 지금 더 늦기 전에 다시 머리들을 싸매야 한다.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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