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없는 중국이냐 … 중국 없는 구글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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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에 자리 잡은 구글차이나 본사 건물 앞에서 한 여인이 구글 로고를 닦고 있다. 중국에서의 철수 가능성을 선언한 구글과 중국 당국 간의 팽팽한 기싸움은 14일 하루 종일 이어졌다.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60년 전 미·중은 한반도에서 무력으로 맞붙었다. 1990년대부터 는 무역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런 미·중 다툼이 이젠 사이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12일 미국의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이 더 이상 중국 정부의 요구대로 검색 결과를 검열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미·중 파워 게임이 격화되고 있다.

그건 ‘위협(threat)’이었다. ‘해킹·검열 등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중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구글(Google)의 선언 말이다. ‘구글이 중국을 떠나면, 중국은 거꾸로 글로벌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외면당할 것’이라는 약점을 노린 포석이다. ‘도전’이기도 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의 요구로 진행해 왔던 자체 검열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반발인 것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를 계기로 ‘인터넷 자유를 보장하라’며 중국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참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 걸친 외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부당 대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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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과 중국 간 ‘파워 게임’이 사이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경제 문제를 둘러싼 양측 갈등은 통상·불균형·위안화 절상 등에 집중됐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 국채 80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분야에서 미국의 압력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미국이 뽑아들 수 있는 유력한 카드는 녹색 경제(환경)와 인터넷 지식재산권뿐이라고 말한다. ‘구글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대중 사이버 지재권 공격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사건이 불거진 직후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즉각 ‘깊은 우려(serious concerns)’를 표명한 게 이를 보여준다. 게리 로크 상무장관도 "중국이 구글 및 다른 미국 기업들에 안전한 사업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글의 협박’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차이나 스탠더드(중국 표준)의 충돌이라는 성격도 갖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중국에 와서 기업을 하려면 중국의 룰을 따르라’는 입장을 취해 왔다. 차이나 스탠더드를 지키라는 얘기다. 서방 기업들은 중국 당국의 ‘불공정 대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거대한 시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구글 역시 4년 전 ‘자체적으로 검열을 하겠다’고 약속한 후에야 중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간섭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서방 기업들의 판단이다. 지난해 8월 터진 ‘리오틴토 간첩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중국과 호주는 철강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호주 측 협상 대표였던 리오틴토의 스턴 후(Stern Hu) 중국 대표가 ‘스파이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방 기업들은 ‘중국이 6000억 달러에 달하는 정부 조달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외국 기업을 배제시켰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방 기업들이 ‘구글의 위협’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의 부당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서방 언론은 ‘구글의 도전은 외롭지 않다’(파이낸셜 타임스)고 부추기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의 부당 대우를 참지 못한 기업들이 구글의 뒤를 따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이 구글의 협박에 순순히 물러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악의 경우 ‘갈 테면 가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그 힘은 역시 시장이다. 약 70억 위안(약 1조1500억원)에 달하는 중국의 인터넷 검색시장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 업계의 거물인 마윈(馬云) 알리바바 사장이 “구글이 중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면 경영상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라고 말한 건 이 같은 맥락에서다.

구글은 이번 ‘협박’을 통해 ‘인터넷의 자유’라는 기치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시장’을 포기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중국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모든 기업이 당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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