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에 레더 내줬다고 ‘천사’별명 붙은 안준호 사실은 진짜 기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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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준호 삼성 감독(왼쪽)이 테렌스 레더(가운데)를 KCC에 내준 후 ‘안천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사진은 경기 도중 마이카 브랜드에게 수비 위치를 잡아주고 있는 안 감독. [뉴시스]

“기부하고 싶어도 못 하고 있는데 기부천사라니요….” ‘사자성어의 달인’ 안준호(54) 삼성 감독은 요즘 괴롭다. 팀이 연패에 빠진데다 테렌스 레더를 KCC에 내주는 트레이드로 ‘안 천사’라는 탐탁지 않은 별명이 붙었기 때문이다.

KCC가 레더를 영입한 뒤 3연승을 달리고 있는 반면 삼성은 4연패에 빠졌다. 일부 삼성팬은 “남 좋은 일만 시켰다”면서 안 감독을 ‘안 천사’라고 부르고 있다. 사실 안 감독은 1승을 올릴 때마다 남몰래 돈을 기부하며 선행을 베풀고 있는 진짜 ‘기부천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트레이드 뒤에는 적립금이 한 푼도 늘지 않았다.

◆레더 트레이드로 ‘안 천사’ 별명=삼성은 지난 7일 레더를 KCC에 내주고 마이카 브랜드를 받았다. 프로농구판이 들썩였다. 레더는 지난 시즌 득점왕과 리바운드왕을 휩쓸었던 주인공이다. 레더가 옮겨간 팀이 KCC여서 파장은 더욱 컸다. KCC는 센터 하승진과 가드 전태풍 등 포지션별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레더가 없어도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던 팀이다. 팬들은 “퍼주기 트레이드 아니냐”고 수군댔다. 맞교환한 브랜드도 수준급 선수지만 레더와 견줄 수 없다는 것이다. “광(光) 4장을 쥐고 있는 KCC에 5광을 만들어 줬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삼성 입장에서 보면 이번 트레이드는 ‘윈윈’으로 볼 수도 있다. 삼성이 최근 4연패 중이긴 하지만 13일 KCC와의 경기 내용은 알찼다. 이날 브랜드는 24점을 넣으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삼성은 시즌 내내 레더 때문에 속을 끓였다. 레더는 삼성과 계약 마지막인 이번 시즌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 이승준과 호흡이 맞지 않아 팀워크를 해치는 것도 문제였다. ‘계륵’이 된 레더 대신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를 찾다가 브랜드를 적임자라고 지목하면서 이번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안 감독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기부는 무슨 기부인가.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이 통했다. 브랜드가 팀에 잘 맞는 선수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트레이드를 했겠나”라며 억울해했다.

◆대반격, 진짜 ‘기부천사’ 될까=안 감독은 코트 밖에서 누구보다 기부에 열심이다. 그는 2005~2006 시즌부터 정규리그 1승당 30만원씩 적립해 ‘새생명지원센터’에 준다. 적립금은 소아암 환자의 수술비에 쓰인다. 지난 네 시즌 동안 기부액이 총 3690만원에 이른다. 안 감독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새생명지원센터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16승에 머물고 있다. 안 감독은 “올해도 기부금 모으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부진하다. 부지런히 승수 쌓아서 많이 적립하고 싶다. 브랜드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6위로 처져 있는 삼성의 대반격이 이뤄지면 안 감독은 진정한 의미의 ‘기부천사’가 된다. 또 팀을 재정비하면 플레이오프 이후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는 것도 안 감독의 복안이다. KCC 관계자는 “삼성에는 단기전 노하우를 잘 아는 노련한 선수가 많다. 오히려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무서운 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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