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정치] ‘의원 삭발’전 선진당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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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성 자유선진당 사무총장이 13일 국회에서 삭발한 머리를 만지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세종시 신안이 발표된 직후 국회엔 ‘바리캉’이 등장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11시40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자유선진당 의원 5명의 삭발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종시 신안에 대한 선진당의 강력한 항의표시였습니다. 17명의 소속 의원들 중 류근찬·이상민·김낙성·임영호·김창수 의원이 총대를 멨습니다. 바리캉이 의원들의 머리카락을 다 잘라내기까진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선진당이 삭발식을 강행하기까진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삭발을 처음 제안한 건 앵커 출신인 류근찬 원내대표였습니다. 그는 당5역회의에서 “정부가 수정안을 발표하면 당3역이 항의 차원에서 삭발하자”고 했습니다. 이상민 정책위의장, 김낙성 사무총장은 흔쾌히 “앞장 서 삭발하겠다”고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가 만류했습니다. 이 총재는 “정말 필요할 때가 되면 나 혼자 대표로 깎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이번만큼은 참아 달라”는 게 이 총재의 간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시 비상대책위 대변인이기도 한 김창수 의원이 “비대위 위원장과 대변인도 동참해야 한다”며 가세하자 이 총재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군요. 그 순간, 김 의원이 지목한 비대위 위원장 박상돈 의원은 좌불안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온 손님이 11일까지 국내에 머물고 있는데 삭발한 모습을 보이면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사정을 이해한 동료 의원들은 박 의원에겐 삭발을 독촉하지 않았다는군요. 임영호 선진당 총재비서실장은 이 총재 대신 나섰다고 합니다. “이 총재가 미안하고 불편해할까 봐”서였습니다. 삭발 후 임 의원은 우울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곧장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마음을 달랬다는군요. 하지만 임 의원은 이날 저녁 기분이 풀렸습니다.

“두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충남)도민증을 봤는데, 머리를 짧게 깎은 사진 속의 모습이 꼭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12일 대전에서 열린 ‘세종시 사수 규탄대회’에 이들 5명은 등산용 털모자를 쓰고 나타났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진 만큼 모자를 쓰지 않으면 찬바람을 견디기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털모자가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답니다. 막상 집회 땐 털모자를 벗어야 했으니까요. 털모자를 쓰고 집회를 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였습니다.

일부에선 의원들의 삭발투쟁을 구태 정치라고 꼬집기도 합니다. 이현우 서강대(정치학) 교수는 “한국 정치문화에선 삭발이 정치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큰 국회의원들은 극단적 표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삭발투쟁은 빈번했습니다.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던 야당 의원 수십 명이 집단 삭발을 한 건 유명한 얘기입니다. 가깝게는 2007년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하며 한나라당 부대표단(김충환·신상진·이군현 의원)이 삭발한 적도 있습니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해외원정 삭발시위’까지 벌였습니다. 김 의원은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벌어지고 있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쌀 개방을 반대하며 삭발과 단식투쟁을 해 외국에서 유명해졌습니다. 

허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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