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시베리아서 '가스 훈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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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러시아 바이칼호 북쪽 이르쿠츠크 지역은 겨울철 고기압의 발원지로,해마다 우리나라에 매서운 북서풍을 안겨 주는 곳이다.하지만 앞으로는 겨울철 추위를 가시게 해줄 천연가스도 함께 보내올 전망이다.

세계 2위의 매장량을 가진 이 지역의 천연가스전 개발사업에 우리나라의 참여가 확정돼 이르면 2008년부터 우리나라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을 이지역에서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반대 딛고 참여=20세기초에 발견된 이루쿠츠크 지역 천연가스전은 매장량이 최소한 8억t이상에 달한다.하지만 지리적으로 유럽과 너무 떨어진데다 춥고 험난한 지형때문에 경제성이 낮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이곳에 눈을 돌린 것은 도시가스의 소비량이 급증하던 95년.가스공사에서 현지조사반을 보내 가능성을 확인하고 조용히 개발사업을 추진했으나 99년2월 장쩌민과 옐친과의 정상회담에서 이곳 가스전에 대한 개발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투자기회를 날릴 뻔 했다.

그러나 중·러간 합의가 이뤄진지 석달 뒤 金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가스전 개발에 한국의 참여를 강력히 요청했고 러시아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꺼져가는 불을 되살렸다.

당연히 중국은 불만이었다.재협상에 소극적이었지만 ‘위험부담의 분산효과’를 내세운 우리측의 설득과 러시아의 지원사격으로 마침내 우리측에 3분의1 지분을 내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배관망 북한 통과할 듯=이번 가스전의 또다른 의미는 남북화해 분위기에 따라 가스배관망이 북한을 경유할 가능성이 커진 점.당초에는 중국을 거쳐 서해 앞바다의 해저배관망으로 우리나라에 공급되는 노선이 계획됐다.그러나 이번 합의로 몽고지역을 우회해 만주와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이어지는 노선이 가능해졌다.

이경우 당초안(4천1백15㎞)보다 거리가 1백80여㎞ 늘어나기는 하지만,서해해저를 통과할 필요가 없어 공사비절감이 예상되고,남북경협과 향후 통일시대에 대비한 인프라 사전확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이경우 랴오닝에서 북경으로 이어지는 지선망을 다시 깔아야해 향후 배관망협상에서 중국측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PNG시대 열린다=이번 사업이 실현되면 우리나라의 천연가스정책이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에서 배관망천연가스(PNG,Pipelined Natural Gas)로 전환하게 된다.같은 천연가스라도 그동안 우리는 중동·동남아지역의 가스를 액화농축시킨 뒤 배로 들여와서 이를 다시 기화시켜 각 가정에 공급해왔다.이는 가스전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기체상태로 바로 공급하는 방식보다 단가가 20∼30% 비싸다.

2008년이후 이곳에서 국내에 들여올 가스물량은 전체 생산량의 3분의1수준인 연간 7백만t내외.이 물량은 2010년 국내수요량(2천1백만t예상)과 현재 장기도입물량(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카타르등에서 연간 1천4백만t씩 공급)과의 부족분을 정확히 메울 수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향후 타림분지와 시베리아의 사하지역에서도 천연가스 개발 가능성이 있어 이또한 국내에 배관망으로 공급받을 경우 궁극적으로 국내 사용량 전량을 PNG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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