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원장 연평균 넉달 '현지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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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 1일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 수석대표로 평양을 방문 중이던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은 전날 7시간여 야간열차를 타고 함경도에서 '현지지도' 중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찾아가 만났다.

金위원장은 당시 함북.함남.자강도.강원도 등 4개 도에 대한 경제부문 현지지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현지지도는 북한식 통치행위의 가장 독특한 형태로, 최고 지도자가 지방간부의 태만에서부터 지방경제의 세세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검열하고 챙겨야 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빈번한 민정시찰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현지지도를 통해 북한사회를 움직이는 '수령의 현지교시' 와 다양한 형태의 대중동원 운동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의 ▶천리마운동▶대안의 사업체계에서 최근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의미하는 강계정신까지 북한의 대표적인 기업운영 시스템, 대중운동, 선전구호 등이 현지지도를 통해 만들어졌다.

북한은 과거 김일성(金日?주석이 직접 현장에 가서 행하는 '정책지도' 에만 이 용어를 사용하고 金위원장의 경우에는 '실무지도' 란 표현을 썼다.

그러다가 90년 1월 7일 노동신문에서 金위원장에 대해서도 '현지지도' 라고 한 이후 모든 선전매체가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통상 정기적인 장.단기 현지지도는 그해 연말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金위원장의 지도방향을 듣고 내년도 대상지역.내용 등을 확정, '지도계획서' 라는 걸 작성한 후 당 정치국의 비준을 받아 최종 확정된다.

이때 서기실(남한의 청와대비서실)이 호위총국(경호실)과 상의해 구체적 일정을 잡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 계획이 확정되면 조직지도부 내 검열지도1과 지도원들이 해당지역, 공장.농장에 미리 가서 전반적인 사업검열을 한 후 金위원장이 내려오면 상황을 종합 보고한다. 이 보고가 현지지도의 기초자료가 된다.

물론 정기 현지지도 외에 수시 현지지도도 이뤄진다. 현지지도가 끝나면 그 지역에서는 '교시' 를 관철하기 위한 집회를 열고, 이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후속조치를 한다.

金위원장의 현지지도 사실은 며칠 뒤 노동신문 1면을 비롯, 전 언론매체를 통해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지난 2일자 노동신문은 金위원장의 자강도 현지지도 소식을 3면에 걸쳐 15장의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金위원장이 64년 6월 노동당 사업을 시작한 때부터 지난해 6월까지 35년간 3천9백여일에 걸쳐 7천4백여 단위의 각급 당기관과 군부대.기업소.협동농장 등을 현지지도했다고 선전한다.

연평균 1백11일, 2백11개 단위를 지도한 셈이다. 90년대 들어 그의 공개된 활동은 1년에 평균 60~70회에 달하는데, 대부분이 지방 현지지도였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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