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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인터뷰] 법인화안 국회 제출 앞둔 이장무 서울대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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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각 학과의 학생 수를 고려해 교수 정원을 할당하던 기존 개념을 없애고 더 우수한 교수를 모셔오는 과에 채용 우선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의 연구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최고의 교수를 영입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가 세계 일류대학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동을 건 이른바 ‘노벨상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추진전략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세종시로 일부 캠퍼스를 이전할지와 관련, “명분이 없는 한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진지한 태도를 허물지 않았다.

◆교수 채용, 학과별 경쟁 유도

-서울대의 국제적인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다.

“최근 세계 대학 종합 평가에서 47위,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평판도 조사에선 세계 25위를 했다. 불과 2004년에만 해도 100위권이었는데, 정말 위상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취임할 때 ‘2025년엔 세계 10위권 대학’이란 목표를 세우며 민망해했는데, 지금 같아선 더 빨리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초학문 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벨상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난달 기초학문 발전을 위한 핵심 전략을 정해서 본부 보직교수들과 상의했다. 이른바 ‘3B 전략’이다. 학과별 경쟁을 통해 우수 교수를 유치하는 ‘두뇌 확보(Brain Gain)’ 사업, 우수한 교수에게 더 나은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두뇌 유지(Brain Sustain)’ 사업, 교수들이 학문 간 벽을 허물도록 유도하는 ‘두뇌 융합(Brain Fusion)’ 사업이 그것이다.”

-교수 채용 방식이 변하는 건가.

“기존엔 교수를 뽑을 때, 학생 대 교수 비율을 고려해서 각 학과에 정원을 할당했다. 내부에서 적당히 편하게 교수를 뽑은 측면이 있었다. 이제 신규 채용하는 교수는 학과별로 무한 경쟁을 시키려고 한다. 최고의 교수를 데려오는 과에 채용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지난해 시범 실시했는데 신청이 쇄도했다. 정종경(분자세포학) 교수 같은 스타 교수가 10명 정도 뽑혔다. 특히 생명과학부가 모범적이었다. 우수 교수를 많이 추천해서 정 교수를 포함해 두 명의 교수를 정원과 관계없이 확보했다. 올해는 30명가량을 무차별 경쟁으로 뽑을 계획이다.”

-실적이 좋은 교수는 어떻게 우대할 계획인가.

“임지순(물리학) 교수를 지난해 석좌교수로 채용했다. 올해는 현택환(화학생물공학부) 교수와 김빛내리(생명과학부) 교수 등 40대 두 명이 신진 석좌교수로 선발될 것이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대학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본다.”

-학문 간 융합은 거대한 트렌드 같다.

“학문 간 벽이 낮아지고 서로 소통을 해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올해 ‘브레인 퓨전’ 프로젝트에 20억원의 연구지원금을 책정했다. 2개 이상의 단과대, 3개 이상의 교수가 참여해 융합 연구과제를 제출하면 20개 연구팀을 뽑아 각 1억원씩을 지원한다.”

◆세종시 이전, 명분 따져 결정

-서울대 법인화안이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일부에서 특혜 논란도 있다.

“법인화가 되면 지금보다 대학 구성원이 더 바빠진다. 경쟁도 심해질 것이다. 법인화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지적이다.”

-법인화가 되면 어떤 점이 크게 바뀌나.

“지금은 스스로 장기 계획을 수립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 교수와 교직원을 30명 증원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 동결’ 방침 때문에 갑자기 무산됐다. 정부 승인이 안 나서 몇 년째 국제처도 못 만들고 있다.”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이 오르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는데.

“오르지 않을 것이다. 법인화안에도 ‘학비를 최소화한다’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간혹 법인화를 민영화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독일에선 국립대 법인을 ‘공적 재단(public foundation)’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도 국립대로서의 정체성과 책무를 이어가지만, 정부기관이 아닌 것뿐이다.”

-세종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전엔 (캠퍼스나 연구소 등의) 이전과 관련한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그 이유는.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되고 있는 사안이다.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큰 그림도 나오지 않았다. 계획이 나온 다음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최종 결정은 학장회의 및 교수평의원회에서 내려질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전 관련 보도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국립대인 만큼 국가시책이 결정되면 따라야 하는 측면도 있지 않은가.

“서울대가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교육과 연구의 발전방향에 합당하다는 명분이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해당 지역에서 ‘꼭 와줘야 한다’고 해야 하고, 대학 내부 구성원도 ‘꼭 가고 싶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은 정신과 명분이 중요한 집단이다.”

◆3개 분야 신입생 증원 필요

-서울대 신입생 정원이 많이 줄었다.

“1995년에 5045명이던 신입생이 올해는 3114명으로 감축됐다. 일부 분야의 경우 과도하게 준 것도 사실이다.”

-정원을 좀 늘려야 한다는 것인가.

“무조건 증원은 곤란하다. 새로운 학문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정원 증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외국어 학과가 영문·불문 등 6개뿐이다. 인도어·아랍어·아프리카어·동남아어 등 수없이 많은 언어가 빠져 있다. 앞으론 인문대에 그런 언어와 문화를 다루는 학문 분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재 학부생 정원으론 그 많은 문화권을 커버할 수 없다. 융합학문 분야와 신재생에너지 같은 신성장동력 분야를 연구할 학생들도 있어야 한다.”

-서울대가 지역균형선발 등을 통해 입학사정관제를 선도적으로 시행했다. 최근에는 사립대에도 많이 확산되고 있는데 주의할 점은.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더 많이 뽑는 것을 목표로 접근하면 실패한다. 학습능력이 뛰어나지 못해도 어려운 여건 때문에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이건 사회적 책무일 뿐만 아니라 대학 수월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이규연 사회부문 에디터, 임미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서울대 4년 지휘’ 이 총장은

이장무 총장 가족은 3대가 11명의 교수를 배출한 ‘학자 집안’이다. 할아버지는 유명 사학자이자 문교부 장관을 지낸 고(故) 이병도 교수다. 아버지는 이춘녕(92) 서울대 농생명과학대 명예교수, 동생은 이건무(62) 문화재청장이다.

이 총장은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다. 온화하고 느릿한 말투와 차분한 성격이 그렇다. 이 때문에 총장 취임 때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리더십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편이다. 서울대가 21년간 논의해온 법인화를 마무리 단계까지 올려놓은 것도 그의 추진력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보직 교수는 “지난해 중순 이후엔 각 단과대를 직접 다니며 법인화 구상을 알리고 반대 교수를 설득했다”며 “큰 갈등이 생기지 않은 것은 이 총장의 부드러운 리더십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력·경력

-1945년 서울 출생
-63년 경기고 졸업
-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75년 미 아이오와 주립대 공학역학 박사
-76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97~2002년 서울대 공대 학장
-2006년 서울대 총장 취임

◆지난 4년 서울대의 변화

·외국인 교수
47명 → 142명

·외국인 학생 (학부생 기준)
580명 → 751명

·세계 대학평가 순위 (더 타임스)
63위 → 47위

·부교수→정교수 승진율
72.8% → 42.0%

자료 : 서울대 2006·2009년 통계연보



캠퍼스에 무료 급식센터 세울 계획
개인적으론 매년 3000만원 장학금 내

이 총장 ‘봉사하는 서울대’론

이장무 총장은 “봉사하는 서울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06년 8월 총장 취임식에서 ‘실천적 지혜’를 뜻하는 철학용어 ‘프로네시스(phronesis)’를 화두로 내세웠다. 같은 해 ‘프로네시스’란 이름의 학생 봉사 동아리를 조직하기도 했다. “서울대가 앞으로는 나누고 희생하는 진정한 리더를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총장이 지난해 초 금융 위기를 계기로 시작한 ‘동반자 사회 운동’은 학교 차원의 봉사 운동이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3000명의 서울대 학생이 저소득 계층 학생들을 주기적으로 보살피는 멘토(조언자)로 활동했다. 경영대와 경력개발센터는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각각 무료 창업 강의, 재취업 강의를 했다. 사회대는 시민들이 교수들의 특강을 들을 수 있도록 ‘시민 강좌’를 열고 있다. 이 총장은 인터뷰에서 “올 상반기 중 ‘사회봉사센터’를 설치해 모든 나눔 활동을 총괄 관리하게 할 것”이라며 “생활협동조합과 함께 교내에 무료 급식센터도 세울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개인적으로는 취임 이후 매년 인문대·사회대에서 고학생 6명을 선정해 30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최근엔 어렵게 공부하는 몽골인 유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 이 총장은 “성공한 사람들은 사회의 혜택이건, 부모의 혜택이건 혜택을 받은 것”이라며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하버드대에도 봉사센터가 있는데, 학부생의 4분의 1 정도가 이 센터의 뒷받침을 받으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며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가 자선과 봉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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