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 간 재정차관 “금리인상 시기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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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인공이었지만 이날은 아니었다. 기준금리를 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면 취재진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금통위 의장)가 의사봉을 두드리는 모습을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8일 카메라의 플래시는 정부 측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금통위에 참석한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에게 집중됐다.

이날 회의 탁자엔 평소(7자리)와 달리 8개의 자리가 마련됐다. 허 차관이 계속 금통위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앞으로의 금통위는 ‘7(금통위원)+1(재정부 차관)’ 형식으로 진행된다.

8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한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부 관료가 금통위에 참석한 것은 10년 만이다. 한은 노동조합은 이날 ‘관치금융 철폐’ 피켓을 들고 허 차관이 탄 차의 진입을 막기도 했다. [연합뉴스]

허 차관은 금통위원과 함께 자리하면서 발언을 할 수 있지만 기준금리를 정하는 의결권은 없다. 그는 회의 직전 기자들에게 “통화정책의 결정권은 금통위에 있다”며 “정부와 한은의 정책공조를 할 필요가 있고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금통위에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된 ‘통화정책 개입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허 차관은 이날 발언권을 얻어 “기준금리 인상은 시기상조”라는 정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금통위원들이 표결로 금리결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허 차관이 회의장에 들어서기 전 한은 노동조합은 ‘관치금융 철폐’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이날 금통위는 예상대로 이달 기준금리를 연 2%로 유지했다. 11개월 연속 동결이다. 허 차관의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시장에선 금통위가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회의 직후 기자실로 내려온 이 총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허 차관의 참석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금통위 의사결정은 금통위원 7명이 하는 것”이라며 “의사결정은 금통위 의장(한은 총재)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7명이 소화할 문제”라고 말했다. 허 차관의 참석 여부가 아니라 금통위원들의 의사와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평소 기자들의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하던 그였지만 이날 따라 짧은 답변이 많았다. 3월 말 임기만료 전까지 통화정책을 어떻게 펼 것이냐는 질문엔 “(기준금리에 대해) 개인적인 희망은 있지만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의 금리수준이 현 기준금리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금통위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며 “언젠가는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평소 견해를 반복했다. 하지만 톤은 강하지 않았다. 저금리의 부작용을 묻는 질문에도 “현재로서는 초저금리의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없다”고 답변했다.

허 차관의 금통위 참석과 이 총재의 발언 등으로 시장에선 상반기 중에 금리인상이 어렵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원배 기자

알려왔습니다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이 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으나 허 차관은 금통위 회의석상에선 금리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는 그동안 강연과 인터뷰 등에서 “민간 부문이 회복될 때까지 출구전략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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