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택시'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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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1일 오후 11시50분쯤 인천시 남구 주안동 주안역 앞 왕복 6차선 도로. 서울 영등포역과 신도림역 방면으로 운행하는 '총알택시' 대여섯대가 늘어서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운전기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운전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은 인근에 있는 S음식점. 10여평 남짓한 음식점에 기사 4명이 모여앉아 소주잔을 주고 받고 있다.

호객꾼(속칭 삐끼)이 "손님이 모아졌습니다" 라고 소리치자 기사 한명이 술잔을 마저 비우고 택시로 달려갔다. 30분 남짓 이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마신 술은 소주 두병.

식당 종업원 朴모(46.여)씨는 "많은 택시기사들이 야참을 먹으면서 소주 반병 정도를 비운다" 고 귀띔했다. 22일 오전 1시 서울시 동작구 사당네거리 먹자촌 뒷골목의 한 기사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소주를 반병 가량 비운 택시기사 李모(32)씨는 "사납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야참을 먹으면서 반주를 곁들인다" 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님을 태우고 떠났다. '술취한 택시' 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경찰이 택시기사에 대해서는 원활한 교통소통과 생계보장 등을 이유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음주운전 단속 대상에서 관행적으로 제외하고 있는 점을 악용, 일부 기사들이 술을 마시고 운전하기 때문이다.

전국 지방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3천여명의 사업용 차량(택시.트럭 등)운전자 가운데 90% 가량이 택시기사라는 것이다.

올해 서울에서 26건, 광주와 부산은 각각 10건, 경기도에서는 4건의 개인택시면허가 음주운전으로 취소됐다.

지난 5월 26일 오전 3시쯤 대구시 K택시회사 운전사 徐모(35)씨는 만취상태(혈중알콜농도 0.128%)에서 영업하다 행인을 치어 전치 5주의 상해를 입혔다.

지난 4월 21일 경기도 부천에서는 개인택시 기사 韓모(45)씨가 음주운전(혈중알콜농도 0.167%)을 하다 마주오던 엘란트라 승용차와 정면 충돌했다. 韓씨의 개인택시 면허는 취소됐다. 하지만 지난 21일 전국에서 벌어진 경찰의 음주운전 일제단속에서 전체 적발자 1천1백65명 가운데 택시 등 사업용차량 운전자는 46명에 불과했다.

회사원 최충섭(40.대구시 서구 비산동)씨는 "며칠 전 오후 10시쯤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차안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고 기사가 신호등 조차 식별하지 못해 다른 차로 갈아탔다" 고 말했다.

광주의 한 택시기사 부인(40)은 최근 "남편이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니 단속 해달라" 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양영유.홍권삼.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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