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가문자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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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방북한 남한언론사 사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기회가 닿으면 전주 김씨 시조묘에 참배하겠다' 고 밝혀 화제였다.

며칠 전에는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가 전주 이씨 수련회에서 '오백년 역사의 중심이 되어 온 전주 이씨' 라고 말했다 해서 여야가 이를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새삼 가문과 성씨에 대한 우리 민족의 지대한 관심을 확인하게 된다.한국만큼 상세하고 풍부한 족보(族譜)를 보유한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재일동포 학자 윤학준(尹學準)이 쓴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 는 그가 과거 조총련에서 활동하던 때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어느날 조총련 중앙본부 간부이자 '혁혁한 혁명투사' 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상대가 같은 안동양반 출신이라는 말을 듣자 뻣뻣하던 혁명투사가 1백80도 바뀌어 고향얘기며 유가(儒家)의 풍습을 놓고 정담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 사상이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오륙백년 이어져 온 의식구조를 하?아침에 불식할 수는 없는 모양' 이라고 尹씨는 회고했다.조총련 부의장을 지낸 김병식(金炳植)도 사석에서는 자기 본관이 김해이고 양반이며 계보를 따지면 '김일성 원수님' 과도 일가가 된다고 자랑했다고 한다.당시 조총련 사회는 김일성(金日成)을 김해 金씨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정작 한 재일동포 상공인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났을 때 "수령님께서는 본관이 어디십니까" 고 정중히 묻자 김일성은 "나의 본관은 조선이오. 조선 金씨외다" 라고 대답하더라는 이야기를 尹씨는 전한다.

조상에 긍지를 갖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물론 긍정적이다.그러나 문벌을 지나치게 숭상해도 폐단이 따르게 마련이다.조선시대의 손꼽히는 명문가들은 대체로 현실추수적이고 보수적이며, 따라서 사회개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다.

그런 탓에 구한말 의병들은 대일항쟁에 소극적이던 몇몇 양반들의 가문을 향해 파자(破字)놀음으로 분노를 표시했다."송(宋)가는 갓을 벗겨 목(木)가를 만들고 윤(尹)가는 꼬리를 잘라 축(丑.소)가를 만들고 김(金)가는 두 ××을 발라 전(全)가를 만들자" 는 식이었다.

역시 가문도 전체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서 자랑하고 북돋워야 더 빛이 난다고 본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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