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생필품 ‘가격 파괴’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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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대형마트 업계가 가격 전쟁에 돌입했다.

신세계 이마트가 7일부터 삼겹살·즉석밥·우유·세제·계란 등 12가지 생필품 가격을 4~36% 내렸다. 이마트는 이들 품목에 이어 올해 안에 취급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그동안의 반짝 할인행사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최소 1개월, 최대 1년까지 지속적으로 인하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라는 것. 자체 마진을 줄이고, 매입 규모를 늘려 원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가격을 끌어내리겠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이날 가격이 인하된 CJ햇반(210g 4개)은 자체 마진을 최대한 줄여 3200원에서 2980원으로 낮추고, 월평균 6만여 개가 판매되는 오리온 초코파이의 경우 월 매입량을 20만 개 이상으로 늘려 가격을 인하했다. 마진이 줄어 올 한 해 영업이익이 1000억원가량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 관계자는 “마진은 줄어들지만, 가격이 싼 곳으로 인식되면 고객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박리다매’ 전략을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마트의 가격인하는 대형마트 업계가 처한 위기를 타개하려는 방편이다. 매장이 계속 늘면서 대형마트는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 TV홈쇼핑 등 다른 유통업태에 비해 매출이 둔화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뒤지면서 고전했다. 이마트는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업태로 다시 자리매김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신년사에서 “(이마트는) 다른 업태나 경쟁업체를 막론하고 질 좋은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체질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이마트의 가격인하는 즉각 파장을 일으켰다. 경쟁업체인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맞불을 놓고 나선 것이다. 홈플러스는 이마트가 가격을 내리기로 한 12개 품목에 대해 수급상의 문제가 없다면 동일하거나 더 싸게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가격 대응에 들어갔다”며 “장기적으로는 (이마트의) 운영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업계의 가격인하 움직임은 향후 납품업체와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가격이 조금 싸진다고 소비자들이 해당 물품을 갑자기 많이 사는 것은 아니다”며 “지금도 한 곳에서 할인행사를 하면 다른 곳에서 납품가를 맞춰달라고 요구하는데, 대형마트끼리 가격 전쟁을 벌이면 납품업체만 힘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번 가격인하는 경쟁업체 사이에서뿐 아니라 업태 간으로까지 거세지고 있는 유통 경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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