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차 서울 온 북 국어학자 류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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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삼국시대에 고구려 사람과 신라 사람이 만나면 통역이 필요했을까.

이같은 물음에 분명히 "그렇지 않다" 고 처음으로 답한 사람이 이번에 서울을 찾아왔던 북한의 원로 국어학자 유열(82.사진)씨다.

이산가족 방문단으로 서울을 찾아와 남쪽의 원로 국어학자인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과 만나 화제가 됐던 유열씨는 우리말의 뿌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북한의 대표적 국어학자다.

그의 대표작은 '세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 와 '조선말의 역사' . '세나라 시기' 란 삼국시대를 말하며, 유씨는 삼국시대의 이두(吏讀)를 통해 우리말의 뿌리를 확인했다.

유씨는 각종 역사서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이두자료, 즉 사람이름.땅이름.벼슬이름 등 모두 8백여가지 표기를 하나씩 풀어 비교하는 실증적 방식으로 1천5백여년 전 우리말의 모습을 찾아냈다.

1983년 그의 연구성과가 남쪽에 알려지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말의 뿌리찾기 연구성과가 적었던 학계로부터 놀라움과 함께 "거의 완벽한 연구결과" 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씨는 이같은 이두 연구에서 시작한 우리말 뿌리찾기를 집대성하기 위해 80년대 중반부터 '조선말의 역사' 라는 대작에 도전했다.

국어사 연구의 줄기를 잡아가는 작업으로 모두 5권을 출간할 예정인데, 현재 2권까지 출간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연구결과로 확인된 사실, 즉 '삼국시대 한반도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말을 썼다' 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국이 모두 같은 민족적 뿌리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인 조선어학자나 해방 후 일부 남쪽 국어학자들은 백제.신라의 남방계와 고구려.부여의 북방계가 서로 다른 뿌리라는 주장을 펴왔는데, 유씨의 연구결과로 설득력을 잃게 된 셈이다.

이번에 유씨를 만난 허웅 이사장은 "남쪽에서 옛 우리말을 유열씨만큼 넓고 깊게 연구해 파헤친 사람은 없다.

특히 그는 이두 연구를 철저히 함으로써 우리말의 뿌리를 확실히 보여주었으며, 아직 미완이지만 '조선말의 역사' 라는 책도 국어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을 대작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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