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오해'까지 낳은 분단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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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만남 이후-.

이산으로 쌓이고 굳어졌던 걱정.오해가 눈 녹듯이 풀어지고 있고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의 생존이 확인되기도 했다.

○…북측 방문단의 이복연(73)씨는 상봉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열여덟에 맞아들여 5년 만에 헤어진 색시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분명히 재혼을 해 상봉장엔 아이들만 내보낼텐데 한살, 세살 때 헤어진 아이들을 어찌 알아볼까" 라고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아내 이춘자(70)씨는 50년을 수절하고 여태 홀몸이었다. 반면 복연씨는 북에서 새 장가를 들어 5남매를 더 두었다.

춘자씨는 "분단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원망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그는 "북쪽 부인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했다" 며 초탈한 모습이었다.

당 간부인 복연씨는 "북에서는 충성하면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내주지만 남에서는 돈이 없으면 그러지 못할텐데 여자 혼자 어찌 대학 공부까지 시켰느냐" 며 재삼 놀랐다.

아내가 선물로 준 시계를 보고는 "팔아서 당신 용돈 쓰시오" 라고 사양했다.

아내가 안쓰러웠던 것. 그러나 아내는 "내 하나 쓸 돈 없을 줄 아오" 라며 남편 손목에 시계를 채워줬다.

춘자씨는 "호로자식이라며 손가락질받던 아들들이 아버지가 계신 걸 알았으니 그 이상 뭘 바라겠느냐" 며 "게다가 남편이 씨를 잘 뿌려 남북 합쳐 7남매라니 든든하다" 며 웃었다.

○…한덕(71)씨는 서울로 오기 전 남한에 남은 동생들의 주소를 받아보고는 마음이 아팠다.

큰누나 영빈(77)씨는 경기도 고양시, 둘째 누나 영섭(74)씨는 경기도 안양시, 동생 인(67)씨는 서울 동작구, 총(62)씨는 서울 서대문구로 네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것.

韓씨는 "누님과 아우들이 나 때문에 서울 을지로에 있던 고향집도 빼앗기고 타향으로 쫓겨났구나 했더랬지요" 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훈과학자 조용관(78)씨는 상봉하기 전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들.딸이 모두 외국에 살고 있다길래 자신이 월북해 남한에서 쫓겨난 건 아닌가 했던 것. 하지만 아들 경제(52)씨로부터 "공부하러, 또 애들 교육 때문에 간 것" 이라는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5일 단체상봉장인 코엑스에서 만난 조카 민병승(69)씨로부터 남편 민원식(79)씨가 북한에 살아 있다는 말을 들은 고승남(78.강원도 강릉시)할머니는 차마 말문을 잇지 못했다.

"조카가 서울로 내려간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15리나 떨어져 있는 조카 집에 지팡이를 짚고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 50년 동안 수절하고 살아온 高할머니는 비록 남편이 재혼해 아들 3형제와 며느리 둘을 보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가슴이 부풀었다.

고수석.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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