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파격적인 말말말…전문가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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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로운 남북 공존의 패러다임을 밝힌 발언들"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이산가족 가정방문 검토는 북한에서 보면 혁명적"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의 지난 12일 오찬 대화에서 드러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남북.대외관계 구상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진취적" "발언 하나하나가 획기적" 이라는 평가를 감추지 않았다.

◇ 확고해진 金위원장의 이산가족 입장〓북한측이 월남가족을 '배신자' 로 치부해 왔음을 감안할 때 金위원장이 9, 10월에도 이산가족이 상봉케 하고 내년께는 가정방문까지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북한의 달라진 '이산가족관' 을 처음 공식 확인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전현준 위원은 "북측은 몇차례 상봉을 통해 자본주의 유입 등의 영향력을 관찰한 뒤 가정방문까지 검토해보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며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로 고향 투자 등 경제적 효과도 병행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고 분석했다.

◇ 가능성 커진 '노동당 규약' 개정〓노동당 강령은 당 이념을 개략적으로 천명한 반면 당 규약은 노선.조직.활동을 규정한 실질 사안. 이종석 위원은 "金위원장이 규약개정보다 북한 실정에도 맞지 않아 별 의미가 없는 강령을 자꾸 거론하며 개정이 어렵다고 한 점을 유심히 봐야 한다" 고 언급. 李위원은 "규약을 바꾸기 위한 내부 반발 정지용으로 '강령 개정은 불가' 를 앞세운 것 같다" 고 했다.

경남대 북한대학원 유길재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사실상의 김정일체제 이후 큰 숙청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金위원장은 사실상 안정지향적 정치인" 이라며 "강령을 바꿀 경우 원로세대들이 물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金위원장의 고민이 적잖은 게 사실일 것" 이라고 지적. '柳교수는 남북정세 변화 때문에 노동당 대회를 다시 준비해야 한다는 金위원장의 발언과 관련, "남북 신사고를 가진 인사들로 세대교체 하는 문제 등을 숙고하고 있을 것" 이라고도 진단했다.

◇ 획기적인 남북 영공 직항로 검토〓전문가들이 눈여겨 보는 대목이 남북 영공 직항로 개설에 관한 金위원장의 발언이다.

국방연구원 서주석 북한군사연구팀장은 "북한의 병력은 사실상 평양과 휴전선 사이에 65% 이상이 배치돼 있다" 며 "남북 비행기가 휴전선을 넘어 왕래토록 한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 라고 지적.

徐팀장은 "직항로 문제는 정전협정체제와도 관련돼 있는 문제로 유엔사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 이라며 "그러나 경의선 복원의 예에서 보듯 남북 합의사항에 미측 입장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분위기" 라고 분석했다.

◇ 북한 미사일, 북.미 수교〓테러국가에서 해제하면 바로 수교하겠다는 金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이종석 위원은 "적극적 관계개선이라는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결국은 미국이 한쪽 고리를 풀어야 한다는 협상용 발언" 이라고 분석했다.

서주석 팀장은 "북한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오던 '미사일 주권' 을 언급 않는 진취적 측면이 있었지만 최소한 중거리 미사일 개발포기에 대한 경제적 반대급부는 확보해야겠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 이라고 설명. '

金위원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을 다소 부풀려 전달했다고 언급했었다. 반면 전문가들은 "국제적 역학관계에 민감한 金위원장이 오히려 푸틴 대통령을 활용, 미측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수도 있다" (유길재교수)고 지적해 눈길.

◇ 과거정권.박정희 인식〓유길재 교수는 "金위원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대해 '불가피했다' 는 언급을 한 것은 개발독재를 주축으로 한 자신의 북한판 근대화전략에 대한 반향을 고려한 것" 이라고 해석. ' "6.25는 열강에 의해 희생된 것" 이라는 金위원장 지적에는 "남측의 전쟁책임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 (서주석 팀장)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과거 정권들이 체제유지를 위해 통일문제를 이용했다는 金위원장 발언이 김일성 선대정권의 실책을 지적한 것이냐는 논란을 두고는 "신사고를 강조하려던 발언" "80년대 중반부터 실권을 가졌던 자신을 포함시킨 발언" 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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