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임의조제 근절로 대타협 이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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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경 일변도로 치닫던 의료계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상공동대표 소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협상에 나섰으며 전공의들이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고 전임의도 일부 병원으로 복귀했다.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의료계의 태도변화가 행여 파업 장기화에 대비한 전략의 일환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제스처여선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의료계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그것도 가능하면 이른 시일 안에 내놓아야 한다.

이미 의료계는 처방료 인상이란 정부안을 거절하면서 수가 인상만이 재파업의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내건 조건 중 하나가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다. 그러나 구속자 석방은 사법부의 몫이며 법치국가에서 엄정한 법집행은 흥정의 대상이 아닌 국가기강의 문제다.

의료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임의분업 방안도 오랜 산고를 거쳐 탄생한 의약분업의 싹마저 잘라낼 소지가 있으므로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의료계의 주장 가운데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임의조제 근절이라고 본다.

일반의약품이라 할지라도 약사의 문진(問診)에 의한 진단과 처방은 의약품 오.남용의 방지란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단이다. 의료계는 낱알 판매량을 최소 30알로 제한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약을 쉽게 구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간단한 질환에도 한꺼번에 30알씩 구입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다.

우리는 최소 판매량을 10~20알 정도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 의료계의 대의명분도 살리고 국민적 불편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최소판매량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끌어내야할 과제지만 이 과정에서 의료계도 30알이란 기존 입장에서 한발 양보하는 자세가 아쉽다 하겠다.

정부도 현행 개정약사법이 임의조제의 소지가 있다는 의료계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임의조제에 익숙한 국민적 관행을 감안할 때 의약분업을 하더라도 일반의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하게 우려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임의조제를 근절하기 위해 최소 판매량을 규정하는 방향으로 약사법을 재개정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정부도 더 이상 의료시장 개방과 전공의 징집이란 실효성없는 엄포로 이번 사태를 봉합하려 해선 안된다.

국민건강과 새로운 의료체계 확립이라는 대전제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한발씩 물러나 대타협점을 찾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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