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한국·일본의 자화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남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도 결코 쉽지는 않다. 오해와 오만.편견.무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걸 못느끼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한.일관계에는 이런 측면이 비일비재하다.

몇년 전 일본특파원 파견을 앞두고 '일본은 없다' 라는 책을 정말 너무 재미있게 밤새워 읽었다. 통쾌했다. 그러나 그 후 일본사회를 단 몇달 경험하고 나서 필자의 독후감은 '뭔가 속았다' 로 바뀌었다.

중견 일본문학연구자 박유하(朴裕河.세종대)교수가 최근 펴낸 책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는 일본을 보는 우리 사회의 눈(眼)에 낀 '더께' 를 신랄하게 후비고 벗겨낸다. '일본은 없다' 는 물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노래하는 역사' '하늘이여 땅이여' 등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작품들이 줄줄이 도마에 올랐다.

조건반사적이고 스테레오타입화(化)한 배일감정, 국수주의에 가까운 유아독존과 그 속에 숨은 폭력성,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일제가 명산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놓았다' 고 믿어버리는 풍토와 이를 부추기는 언론 등이 비판대상이다. 서울대 교수나 저명한 작가의 일본관(觀)에도 일침이 가해졌다. '문제는 일본을 왜곡하는 일이 실은 우리 자신을 왜곡시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 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일본의 우파 학자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용 역사교과서 내용이 밝혀졌다.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대한 원폭 투하는 '전쟁범죄' 나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로 몰면서 '한반도는 일본에 끝없이 들이대어진 흉기가 될지 모르는 위치관계다' 라며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합리화하고 있다.

고대사 부분에서는 '일본열도에는 4대문명에 앞서 1만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계속된 삼림과 암청수(岩淸水)문명이 있었다' 는 인류사적 발견(?)까지 보탰다.

또 공민교과서는 현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한편 일제시대 헌법을 높이 치켜세우고 있다.웃을 일은 아니다. 이런 교과서를 지지하는 '일본의 앞길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 소속 국회의원이 무려 1백7명이다. 제 눈의 들보를 보기가 이토록 힘든 것일까. 광복절을 맞아 새삼 한.일 양국의 자화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노재현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