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읽기] '벤처형PD' 에게 보내는 갈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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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선정과 폭력이 좋지 않다는 걸 영리한 TV 제작진이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그걸 반복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비판하는 측에서야 전혀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일지 모르지만 차분히 마주앉아 듣다보면 그들의 말이 완전한 궤변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체로 공감하게 된다.

우선 그 논거의 기초가 되는 사상(?)은 철저한 '수용자 중심주의' 다. 소비자가 원하는 걸 생산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일본 후지TV의 사훈이 그렇다던가. 이른바 재미가 없으면 TV가 아니며 시청자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마땅히 제작진은 그들을 즐겁게 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왜 선정과 폭력만이 재미의 근간이라고 예단하느냐는 것이다. 재미의 세계는 실로 다기다양한데 왜 오로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그것도 원초적 본능쪽으로)에만 그렇게 집착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간단하다.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벗기고 때려서 눈길 끌고 그것으로 이익(시청률.광고수익)을 얻는다면 솔직히 창녀가 누워서 돈 버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당사자는 자존심까지 버렸다고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봤자 돈도 안될 뿐더러 무시까지 당했다고 어깨를 들먹인다.

그렇다고 꼭 이렇게 벗고 드러누워야 했을까. 뜻을 세우고 묵묵히 땀흘리는 벤처형 PD들을 고무.진작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형편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는 '시청률 좀 봐. 시청자 수준이라는 게 고작 이렇다니까' 하며 낄낄대는 PD의 모습은 측은함이 느껴지는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자위하고 있는 것이다. 자위로는 결코 생산(감동 탄생)에 이르지 못함을 모를 리 없는데 말이다.

자위행위에 골몰하는 청소년에게 주는 조언이 고작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누가 모르는가. 다양한 여가활동을 하도록 분위기가 마련돼 있는가 말이다. 오로지 성적으로 줄 세우는 풍토에서 무슨 다양한 취미활동인가.

최근 미국여행에서 만난 실리콘밸리 젊은이들에게서 내가 뽑은 공통점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프로의식이다.

그들은 기존의 고정관념과 권위체계에 과감히 도전한다. 그들은 자유분방하다. 자신이 자라온 세상과는 다른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오히려 관대함과 포용정신이 있다.

PD들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라. 실험정신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라. 환경은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 때맞춰 몰아치기로 야단만 친다면 문제의 개선은 요원하다.

나는 종종 놀란다. 어쩌면 학교와 방송이 이토록 닮은꼴인지 말이다.

성적(시청률)으로 모든 게 평가되고 부정행위에 너그러운 분위기에서 도전과 실험은 없다. 실험은 실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이여야 한다.

그저 안전하게, 그냥 무난하게, 시청자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는 데 길들인 PD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에서 좋은 프로그램의 생산은 아득하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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