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강 우리 손으로 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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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원도 영월 동강댐 건설계획이 우여곡절 끝에 백지화한 게 불과 두달여 전이다. 그러나 정작 동강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수천명의 탐방.피서객이 북적대고 잡상인과 쓰레기, 무분별한 래프팅이 횡행하는 판이니 동강이 무사할 수 있겠는가.

댐 건설은 가까스로 막았지만 우리의 이기심은 동강의 아름다운 자연과 비오리.어름치를 여전히 망치고 쫓아내고 있다.

본격적인 동강 살리기 운동을 이제부터 벌여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우리는 올해 초 발족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본부가 최근 제창한 '동강 문희마을 트러스트운동' 을 적극 지지한다.

이 운동은 동강 살리기의 1단계로,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 일대 2만여평의 땅을 시민 모금을 통해 구입해 보전.관리하자는 취지다. 목표기금액은 불과 5억원이다.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동강을 살려 당대는 물론 후손들에게도 깨끗하고 풍성한 자연환경을 물려주자는 것이다.

'국민신탁' 또는 '자연신탁' 으로 번역되는 내셔널트러스트라는 말 자체에 우리의 소중한 자연.문화자산에 투자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국은 이미 1895년부터 이 운동을 벌인 결과 현재 회원 수가 2백50만명에 달하고 3천억원이 넘는 연간 예산을 운용하고 있다.

영국 전체 토지의 1.5%, 해안지역의 17%를 트러스트 회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소유 해안선 총연장이 8백57㎞나 된다고 한다. 우리라고 못해낼 것이 없다.

동강은 '한국형 트러스트 운동' 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문희마을 일대는 멸종 위기의 동.식물 여러 종이 서식하는 데다 황새여울.백룡동굴도 있어 생태적으로 우수하며, 신석기시대 유적까지 발견된 곳이다.

트러스트 운동에 대해 현지 주민들도 호의적이다. 자녀교육 차원에서도 시민모금, 땅 한평 갖기 등 운동본부가 벌이고 있는 각종 캠페인에 참여하는 일은 의미가 크다.

우리는 트러스트 운동이 동강 살리기에 끝나지 않고 국내의 다른 자연환경, 나아가 문화유산에까지 외연(外延)을 넓히길 기대한다.

보존 대상 지역의 땅값이 너무 비싸다면 일본처럼 임대차계약을 함으로써 적은 금액으로 보존 목적을 이루는 방법도 있다.

안그래도 좁은 국토가 곳곳에서 마구잡이 개발로 신음하고 있고, 최근에는 지자체들의 개발 욕심 탓에 파헤쳐지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시민들이 나서 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한 이상 중앙정부나 지자체도 호응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특히 국회와 정부는 내셔널트러스트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면의 뒷받침을 서둘러야 한다. 애써 댐 건설을 막아놓고 우리 손으로 동강을 망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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