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생 외면하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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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은 짜증스럽고 불안하다. 현대 사태로 고조된 경제적 위기감과 의료계 재폐업 등으로 국민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뒤숭숭하고 답답하다.

중환자들이 치료받을 곳이 없어 병원을 전전하고 현대 사태로 주가가 춤을 추지만 어디에도 시원한 해법이나 대안 제시가 없는 딱한 상황이 몇달째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 개각을 하고 대통령이 신신당부를 하면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민의 수렴장으로서 국회가 나서야 하는 지금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렇지 못하다. 임시국회 소집 나흘 만에 문을 닫고는 뒷전에서 엉뚱한 싸움질만 하고 있다. 여야 스스로가 내뱉은 대로 '개판 정치' '저질 정치' 가 이어지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민생이 어찌 돼 가는지 아랑곳 않는 투다. 온 나라가 끓고 있는데 이달 말 있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이 누가 되느냐는 집안 싸움에나 골몰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돈봉투 살포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10억원은 족히 든다느니, 파벌이 어떠느니, 차기 대권과는 무관하다느니, 도대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는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생은 간 곳이 없고 권력의 향방만 좇음으로써 정치 혐오증만 더하고 있다. 의료대란이 급해지자 어제서야 당정협의를 열어 정부안을 추인했을 뿐이다.

다수당이라는 한나라당도 나을 게 없다. 국정의 한 축을 맡은 야당으로서 의료대란 같은 화급한 현안을 원내로 끌어들여 사태 수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든지, 조정역할을 했어야 했다.

이런 노력이 없으니 여권의 실정만 부각시켜 정국 주도권이나 잡으려는 게 아니냐는 음습함까지 느끼게 한다.

또 현 정부가 반미(反美)를 방치한 의혹이 있다면 국회가 개원 중일 때 들어가 이 문제를 포함한 모든 국정 현안을 따지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을 하는 게 온당했다.

그랬다면 뒤늦게 여야간에 벌어지고 있는 '친미' '반미' 논쟁 같은 치졸한 입씨름은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여야는 파행 국회 속에 엊그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좋은 평가를 받는 배경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국가 경쟁력의 뿌리인 만큼 정치 갈등에 휘말려서 안된다' 는 이상희(李祥羲)위원장의 소집 이유도 공감이 가지만 여야가 한시라도 국정을 소홀히 해선 안된다는 자세 자체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

여야는 최소한 시급한 현안 관련 상임위라도 열어 국정을 진지하게 다루고 합의를 도출해 국민의 답답함을 달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민의 관심이 온통 쏠린 국정 최대 현안에 정치가 아무 기여도 못했다면 그런 정치, 그런 국회가 왜 필요하냐는 지탄밖에 남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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