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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 막을 수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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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이동통신 업체들이 휴대전화의 복제를 방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도 이를 방치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불법으로 복제된 휴대전화가 시중에 무더기로 유통돼 복제 휴대전화(일명 쌍둥이폰)를 이용한 범죄와 사생활 침해가 빚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해 왔다.

30일 정보통신부가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KTF 등 이동통신 업체들은 설비투자 부담 등을 이유로 휴대전화 복제를 막을 수 있는'인증키 프로그램'을 도입하지 않은 채 최근까지 운용해 왔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오래 전부터 인증키가 담긴 휴대전화를 생산해 왔으며, 해외에 수출도 해왔다. 그러나 이동통신 업체들은 휴대전화의 고유번호(ESN)만을 인식하는 제품만을 공급받아왔다. ESN은 인증키와 달리 쉽게 알아낼 수 있어 휴대전화 복제가 기승을 부렸다. 정통부와 통신업체 측은 "인증키를 도입하면 통신망에 두 배 이상의 부하가 걸리고 투자비가 추가로 들어 도입을 늦춰왔다"고 해명했다.

◆ 악용 사례=ESN은 시중에서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 통신사업자 직원들이 고객들의 ESN을 유출하는 사례가 수사기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또 ESN을 읽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개발돼 전자상가 등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2940건의 복제 휴대전화 범죄가 적발됐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지난달 9일 1200여명의 개인정보와 ESN 번호를 구입한 뒤 복제 휴대전화를 만들어 3500만원을 불법 결제한 일당 4명을 구속했다. 범인은 휴대전화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ESN 번호를 쉽게 빼냈던 것이다.

올 초에는 대당 3만원씩 받고 500대 이상의 휴대전화를 불법 복제한 혐의로 이모씨 등 3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씨 등은 또 특정인의 위치추적을 원하는 사람에게서 50만원씩 받은 뒤 이동통신 업체 직원과 공모해 특정인의 휴대전화를 복제해 주었다.

◆ 도청 논란=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지난해 9월 "복제 휴대전화로 도청이 가능하다"면서 복제 휴대전화로 동일 기지국 내에서 도청이 가능하다는 시뮬레이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이론상으로는 복제 휴대전화를 이용한 새로운 도청기술의 개발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통신 업체 측은 "지난해 10월에 동시수신차단시스템을 도입해 복제 휴대전화로 엿들을 수 없게 했다"고 밝혔다.

◆ 뒤늦은 인증키 도입=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서도 ESN과 별도로 휴대전화기에 인증키 기능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휴대전화 불법 복제가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SK텔레콤과 KTF는 30일 "지난달 20일부터 출시되는 휴대전화에 인증키 프로그램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LG텔레콤은 1998년부터 30만명 정도의 이용자를 확인할 수 있는 소규모 인증시스템을 시험적으로 운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김종문 기자

*** 휴대전화 키워드

▶ESN(Electronic Serial Number:일명 헥사번호)=휴대전화에는 헥사번호와 일련번호 등 두 가지 고유번호가 있다. 통신사업자는 가입하려는 고객의 전화기에서 이들 두 번호가 일치할 경우 가입을 승인한다. 헥사번호는 기기 내부 칩에 입력돼 있으며, 일련번호는 단말기의 뒤편에 적혀 있다.

▶인증키(Authentication-Key)=단말기와 이동통신망 사이의 신분확인 절차로 개인의 비밀정보가 담겨 있다. ESN이 동일하더라도 인증키가 다르면 통화가 불가능하게 된다.

▶휴대전화 복제=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ESN을 지워 버리고 이미 사용 중인 특정 휴대전화와 ESN을 똑같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휴대전화는 ESN만 같게 하면 쌍둥이 휴대전화를 여러개 만들 수 있었다. 인증키를 설치할 경우 사용자 확인절차가 이중으로 강화돼 ESN을 조작해도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반론

10월 1일자 3면 '휴대전화 불법복제 막을 수 있었다'기사와 관련, 정통부는 정부가 복제방지 기술이 있는데도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에 대해 "인증키 도입은 이동통신 업체의 결정사항이며, 정통부는 업체들에 인증 시스템 도입을 행정지도할 수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또 이 기사 중 '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2940건의 복제 휴대전화 범죄가 적발됐다'는 부분은 정통부(2003년 10월~2004년 7월 1940건)와 경찰청(2004년 8~9월 1000건)의 자료를 합친 숫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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