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태평양 건너온 동포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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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9일 서울 모 병원 병동에서 마흔네번째 생일을 맞은 재미교포 文성환씨의 감회는 여느 해와 달랐다.

자신의 신장을 만성 신부전증 환자에게 이식하는 큰 수술을 치른 직후였기 때문이다.

홀로 이민을 떠나 미국 워싱턴에 거주한 지 11년. 현지 회사에 취직, 미국 시민권자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그가 장기(臟器)기증이라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지난해 초 우연히 본 한 국내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 때문이었다.

"하루 5시간씩 매주일 3~4회 혈액투석을 하며 고통스럽게 생명을 이어가는 신부전증 환자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TV를 끄고 나서도 힘들어 하는 그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더군요."

고국의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길을 수소문하던 그는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를 통해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A씨를 소개받았다.

20대에 폐결핵을 앓아 폐 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던 자신의 과거도 기증 결심을 굳히는 데 한몫 했다.

"홀아비 마음은 과부가 안다잖아요. 건강하지 못한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죠. "

그는 지난달 초 회사에서 장기 휴가를 받아 태평양을 건너왔다.

항공료와 수술비도 자신이 부담했다.

수술은 지난 4일 성공리에 끝났고, 文.李씨는 며칠 뒤면 퇴원할 수 있다.

A씨는 文씨의 얼굴도, 이름도 모른다."절대 알리지 말라" 고 文씨가 병원측에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다음달 결혼한다는 文씨는'다소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순간입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누구나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기선민.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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