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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포커스] 후진타오, 싱가포르에 판다 선물한 깊은 뜻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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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10월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 왼쪽부터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아손 라오스 총리,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아피싯 태국 총리, 하토야마 일본 총리,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 테인 세인 미얀마 총리,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훈센 캄보디아 총리, 수린 아세안 사무총장.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코앞에 두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국빈방문했다. 1994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이후 국가주석으로선 15년 만이다. 믈라카해협 전망대에서 믈라카 주정부는 후 주석에게 8888호 조망인증서를 선사했다. 8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행운을 상징한다. 후 주석은 이곳에서 말레이시아 관광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기념촬영을 했다. 현지 언론은 “후 주석이 대중적 친밀도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에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례적으로 후 주석 명의의 성명이 발표됐다. “중국·싱가포르는 국제·역내 현안에서 긴밀한 공조관계를 맺어온 우방”이라는 내용이 골자였다. 후 주석은 친선 사절로 판다 한 쌍을 선물했다. 싱가포르에선 때아닌 판다 열풍이 불었다. 1일부터 발효된 중국·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10개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개막을 앞두고 양측 간에 이뤄진 신뢰 쌓기의 단적인 모습들이다. 인구 19억 명,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6조 달러에 달하는 중·아세안 FTA는 유럽연합(EU)·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에 이어 셋째로 큰 시장을 창출한다.

중국이 애써 동남아 국가들과 밀착하려는 건 동트기 시작한 동아시아 통합체를 주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아시아권에서 중국의 최대 라이벌인 일본은 돈을 풀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는 지난해 4월 2조 엔(약 26조원) 규모의 아시아 역내 무역보험제도와 동남아에 대한 일본의 정부개발원조(ODA)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은 또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태국·캄보디아·베트남·미얀마·라오스 등 메콩강 유역 5개국 정상과의 ‘일·메콩 정상회의’에서도 향후 3년간 5000억 엔 이상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동아시아 통합 논의에서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대규모 자금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통합 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유럽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두 시장에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경제 구조 때문에 통합된 역내 시장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됐다. 지난해 12월 24일 서명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 기금’도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을 지향하는 첫 역내 금융협력시스템이다.

◆동아시아 맹주 노리는 중국=중국은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동아시아에 근거를 마련해 세계로 나아간다(立足東亞 走向世界)’는 동아시아 전략을 채택했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강 조해온 양자관계와 함께 지역협력을 대외정책의 한 축으로 규정한 것이다. 고도성장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이 진정한 강국은 역내 주도권을 잡는 데서 시작한다는 걸 인식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진작 예고됐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중국은 아세안과 정치·경제적으로 유대를 강화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아세안+3(한·중·일)’로 구성하는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중국 독주 안 돼”=일본은 ‘아세안+3’ 구도로 통합 논의가 진행되면 중국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고 우려한다. 회원국이 비교적 고른 정치·경제적 역량을 갖고 있는 EU와 달리 동아시아는 국가 간 격차가 커 중국의 구심력에 휩쓸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동아시아 공동체에 ‘아세안+3’ 외에 역내에서 중국의 라이벌인 인도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호주 및 뉴질랜드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밀고 있다. 2005년 출범한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아세안+3’+3)가 모태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외상은 “아세안+6(‘아세안+3’+3)가 공동체의 기본 골격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아시아 주도권 못 내줘”=동아시아공동체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세계 경제의 주동력이 된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중국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주 등 우방을 지원해 EAS 출범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은 동아시아 통합 논의에서 빠질 수 없으며 미국 주도로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일본 방문 중 “나는 미국의 첫 번째 태평양 대통령”이라며 “ 미국과 아시아는 태평양에 의해 연결돼 있다”고 방점을 찍었다.

지난해 12월 호주 케빈 러드 총리가 제안한 ‘아태공동체(APC)’도 오바마의 발언 연장선에 있다. 아세안과 한·중·일 3국, 인도·호주·뉴질랜드 외에 미국을 포함시키자는 것이 핵심이다.

◆3대 주주 노리는 한국·아세안=한국은 ‘아세안+3’ 또는 ‘아세안+6’에서 캐스팅 보트로서 위상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중·일의 각축 사이에서 힘의 쏠림을 막아주는 3대 주주의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아세안+3’ 방안이 최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호주·인도 등 강대국을 자처하는 나라들이 늘어날수록 한국의 지분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중국 견제 효과가 있는 미국의 참여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43년의 역사를 내세우는 아세안도 2015년 아세안 통합을 전제로 2008년 12월 아세안 헌장을 발효시켰다. 정치·경제적으로 통합된 아세안은 한·중·일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갖게 된다. 아세안은 ‘아세안+3’보다는 이해관계가 다른 나라들이 많이 포함되는 방안을 선호한다. 통합 아세안은 하나의 블록이지만 표결 상황에선 10표로 뭉쳐 발언권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용환 기자

◆아세안=아세안 10개국(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브루나이·베트남·라오스·미얀마· 캄보디아) 1967년 발족 이후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협력체였으나 2015년 정치·안보·경제·사회를 통합하는 아세안 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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