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분단국 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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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같은 분단국이지만 중국.대만과 남.북한은 교류.협력 측면에서 비교할 바가 못된다. 이산가족 상봉만 해도 중국과 대만은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탐친(探親)' 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 지역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만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만기자들은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人大) 등 중요한 뉴스거리가 있으면 순회특파원 형식으로 대륙을 방문해 취재한다.

상주기자가 허용되지 않을 뿐이다. 1994년 중국 저장(浙江)성 천도호에서 유람선 화재로 대만관광객 24명이 몰살당했을 때도 대만기자들이 대거 현장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양측 정부는 각자의 원칙과 입장을 가능한 한 고수한다. 일본 신문에 대한 정책변화 과정이 한 예다.

친대만.반중국 색채가 짙었던 보수우익지 산케이(産經)신문은 중.일 수교 이후에도 베이징(北京)에 상주특파원을 두지 못했다. 중국이 꺼렸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들이 베이징 지국을 운영한 대신 산케이 신문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 지국을 두었다. 98년 7월에 중국당국과 산케이신문은 '묘수' 를 찾아내 타협에 성공했다.

중국이 산케이신문의 베이징지국 개설을 허용하되, 지국 명칭을 '중국총국' 으로 한다는 합의였다.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켰고, 산케이신문은 중국 진출의 뜻을 이룬 셈이다.

닛케이(日經).아사히(朝日).요미우리(讀賣) 등 다른 유수한 일본신문들도 '산케이 방식' 을 원용해 자사의 베이징 지국 명칭을 '중국총국' 으로 바꾼 뒤 차례로 타이베이 지국을 개설했다. 대만당국은 이같은 상황 변화를 용인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신문.방송사 대표 46명이 지난 5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 중이다. 분단 이후 처음이다.

첫날 열린 환영연회에서 북한 노동신문의 책임주필은 축하연설을 통해 남북언론인이 '통일대행진의 나팔수' 가 되자고 강조했다고 한다.

'나팔수' 의 어감(語感)이 독재에 시달린 경험을 가진 남쪽 언론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을 리 없지만 북측은 사정이 다를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고 인민들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는 데 복무' 하는 것이 북한언론의 '사명' 이니까. 그만큼 남북한 언론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번 방북이 그 이질감을 완화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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