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마지막 대폭 개각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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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개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관리할 진용을 짜는 개각이라고 한다. 각료의 직무 수행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책임질 일이 생기면 언제고 각료는 교체할 수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국정수행이 원활치 못해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지면 국정분위기 쇄신 방안으로 개각이 활용되기도 한다.

현재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부진, 의약 분업을 둘러싼 사회적 불안 심화 등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요인들이 쌓여 있다.

더구나 개각이야기가 나온지도 이미 오래 됐다. 공무원들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더 이상 개각을 늦추다간 국정이 표류할 우려마저 있다. 지금 상황에서 개각은 불가피해 보이는데 문제는 각료 교체가 너무 잦다는 점이다.

장관의 잦은 교체는 국정의 안정적 수행과 계속성을 저해한다. 그 부처에서 자란 직업관료 출신과 외부기용의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신임 장관이 부처의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해 제대로 정책을 세우고 수행해 나가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지난 10여년간 처럼 장관들이 평균 1년 정도로 바뀌다 보면 업무를 파악하고 부처를 장악해 본격적으로 일 좀 하려다 끝나는 이른바 '과객 행정' 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치하에선 군정기간을 제외한 16년 집권기간 국무총리가 5명이었다. 최두선(崔斗善).정일권(丁一權).백두진(白斗鎭).김종필(金鍾泌).최규하(崔圭夏)씨 등이다. 이중 丁씨는 6년반, JP는 4년반 총리로 재임했다.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의 7년반 집권기간 중엔 남덕우(南悳祐).유창순(劉彰順).김상협(金相浹).진의종(陳懿鍾).노신영(盧信永).이한기(李漢基).김정렬(金貞烈)씨 등 7명이 총리로 일했다.

임기가 5년이었던 노태우(盧泰愚)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아래서도 각각 이현재(李賢宰).강영훈(姜英勳).노재봉(盧在鳳).정원식(鄭元植).현승종(玄勝鍾)씨와 황인성(黃寅性).이회창(李會昌).이영덕(李榮德).이홍구(李洪九).이수성(李壽成).고건(高建)씨 등이 총리로 재임했다.

朴정권때 평균 3년이 넘던 총리 재임기간이 全정권에선 1년1개월, 盧정권에선 1년, 김영삼정권에선 10개월로 줄어든 것이다.

이런 단명화(短命化)경향은 총리뿐 아니라 장관도 마찬가지다. 朴정권때의 최형섭(崔亨燮) 과기처장관은 재임기간 7년반으로 우리나라에서 최장수를 기록했고, 교수출신의 남덕우씨는 재무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으로 연속 9년여를 각료로 일했다.

이들 외에도 3년 정도 장관으로 재임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안정적이던 장관의 수명이 全정권 들어 줄어들기 시작했고, 盧정권부터는 단명화로 치달았다.

盧정권의 잦은 개각을 빗대 "내가 대통령이 되면 큰 문제가 없는한 장관들이 나와 임기를 같이 하도록 하겠다" 던 YS도 전혀 나을 것이 없었다.

그의 공언대로 그와 임기를 같이 한 장관은 오직 한 명뿐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정부에서도 벌써 총리가 3명이나 나오는 등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장기집권을 한 朴대통령과 5년 단임의 盧대통령 이후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5년 단임 대통령도 적재(適材)만 고르면 5년까지는 쓸 수 있고, 중도 교체가 필요하다 해도 2, 3년 정도의 안정적 재임은 허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대통령의 5년 단임이 장관을 자주 바꿔야 할 이유는 안된다고 본다.

장관이 자기 나름의 정책비전을 수행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스스로 예산을 세워 집행해 보려면 2년 정도가 필요하다. 1년 정도로는 선임자가 세운 예산을 집행하고, 후임자가 쓸 예산을 세우다가 물러나고 만다. 자기 나름의 정책을 펴볼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장관의 적정 임기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 예산을 세워 집행해 볼 수 있는 정도의 기간이 한 기준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단행될 개각이 대폭 개각으로는 金대통령의 임기중 마지막이 됐으면 싶다.

지금은 임기초와는 달리 인재에 대한 자료도 충분할 것인만큼 신중하게 적재를 골라 임기말까지 소신을 갖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맡기는 게 나라를 위해 바람직하다. 각료에 대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기엔 남은 시간이 많지 않고,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엄혹하다.

성병욱 본사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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