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박정희기념관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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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관중은 그릇이 작다(管仲之器小哉)" "관중이 예를 알면 누가 예를 모르랴(孰不知禮)" 가 공자(孔子)의 관중에 대한 평이다.

관중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업적을 높이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이런 관중에 대한 공자의 평은 그야말로 혹평이다.

이유는 인덕(仁德)보다 힘을 늘 앞세운 패도(覇道)의 정치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늘 혹평만 한 것은 아니다.

제자 자공(子貢)이 "관중은 인자(仁者)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말했을 땐 "관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오랑캐가 됐을 것이다.

백성들이 아직도 그의 은덕을 입고 있으니 누가 그의 인(仁)만 하겠는가(如其仁)" 라고 칭찬도 했다.

그러나 "공자의 문도들은 5척 동자라도 관중에 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가 후대의 유교도들이고, 그것은 2천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업적이 뛰어나고도 가혹하게 평가받기는 19세기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도 마찬가지다. 누가 생각해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을 성사시키고, 누가 계산해도 성취될 것 같지 않은 후진 독일의 산업화를 최단시일 내에 성공시킨 정치인이 바로 그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도 그랬지만 사후 1백주년을 2년 전에 맞은 지금도 '위대한 지도자 비스마르크' 와 '독재자 인권 유린자 비스마르크' 가 똑같이 평단에 올라 있다.

인물을 평하는 데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인색한 국민도 드물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에서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우리 역사에서 존경하는 인물이 누군가 물었을 때 90% 이상의 국민들은 오직 두 사람, 세종대왕.이순신 장군이라고만 답한다.

그렇다면 조선조 사람들도 이 두 분을 오늘날 우리처럼 그렇게 존경했을까. 우리 선인들이 즐겨 읽던 홍길동전의 첫 머리는 '천하에 도적이 횡행하고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백성이 도탄에 빠져 헤매던 세종대왕 시절에' 라고 쓰고 있다.

왕실이나 양반층 사람들 외에 일반백성들도 세종대왕을 성군이라 생각했을까. 홍길동전의 저자 또한 양반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 양반층도 오늘날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르지 않았을까.

이순신 장군은 어떠한가. 이순신 장군 사후 2백년에 영의정으로 겨우 추증되고, 그 2백년이 지나서야 임금(正祖)이 친히 비문을 지어 하사한 것을 보면 영의정으로 추증된 다른 수많은 인물들에 비해 이순신 장군이 특별히 존경받았다 할 수도 없다.

그 후로도 1백년이 훨씬 넘도록 이순신 장군은 사실상 잊혀져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그토록 높이 떠받드는 데는 우리 자신보다는 부끄럽게도 실은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국사(國師)라고까지 칭해지는 연전에 죽은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오히려 한국인들은 잊어버리고 있던 이순신에 대해 일본인들이 더 큰 경애와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과 함께 노일전쟁 당시 도고(東鄕)함대의 수뢰사령관이던 가와타 쓰토무(川田功)가 함대 출동 전 이순신 장군 영전에 빌었다는 글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당연히 세계 제일의 해장인 조선의 이순신,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력 그의 지모와 용기,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상찬의 대상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 조선조 어느 문사, 어느 역사가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토록 극찬의 존경지염을 드러낸 일이 있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김영삼 정부 때 김영삼.김대중 양 金씨까지 포함시킨 역대 지도자 평가에서 국민 70% 이상이 朴전대통령을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답했다.

설혹 그렇다 해도 朴전대통령에 대한 2중 평가는 관중이나 비스마르크에서 보듯 역사가 아무리 흘러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한 정부 지원금으로, 더구나 이 시점에 대통령기념관을 짓는다는 것은 국론만 흩뜨리고 시비만 증대시켜 자칫 朴전대통령의 업적만 급격히 폄하시킬 가능성을 크게 할 뿐이다.

더구나 현직 대통령이 명예회장이 되고 청와대 비서실장.정무수석.행자부장관.여당고문 등이 기념사업 주체로 망라될 땐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 이 아니라 그의 업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이상이 결코 될 수가 없다.

朴전대통령의 기념관을 둘러싸고 이제 더 이상의 논란, 더 이상의 술수는 벌이지도 쓰지도 않아야 한다.

송 복 <연세대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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