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박물관 깜짝놀랄 국보급들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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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사설 박물관 중의 하나인 호림(湖林)박물관이 국학 연구 자료의 보고(寶庫)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 신림11동의 다소 외진 산자락의 이 박물관은 5천여점의 토기류와 3천7백여점의 도자기(백자 2천여점.청자 7백50여점.분청사기 5백여점), 1천7백여점의 회화.전적(典籍)류, 5백여점의 금속공예품 등 총 1만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보 1백79호인 '분청사기박지연어문편병(粉靑沙器剝地蓮魚文扁甁)' 을 포함해 국보 8점과 보물 36점이 있다. 콜렉션의 규모와 질로 치면 호암박물관에 버금간다는 평가다.

수준이 이 정도다보니 호림박물관은 국문학.역사학.고미술학.서지학 등 국학 연구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좋은 연구 파트너로 이름이 높다.

지난해 대치동 시대를 마감하고 이곳으로 옮겨 재개관한 이후 전시 기회가 잦아지면서 학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 꼭 열람이 필요한 개인 연구자들에게는 공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지만, 아무래도 특별전 등 공식적인 열람보다는 이용이 자유롭지 못한 편이었다.

지난달 29일엔 국내 문헌연구에서 독보적인 '문헌과해석' 팀의 몇몇 멤버들이 전시품를 둘러봤다.

현재 이곳에서는 1993~99년 구입한 유물을 중심으로 '호림박물관 구입 문화재 특별전1' (31일까지)을 열고 있는데, 조선시대 의금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풍류를 즐기던 계회(契會)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금오계첩(金五契帖)' 등 국보급 유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 특히 문헌과해석팀의 관심을 끈 것은 50권 화엄경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권제1(初雕本大方廣佛華嚴經 卷第1)' 이었다.

한국기술교육대 정재영 교수는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0.60.80권으로 분권되면서 50권 화엄경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며 "존재하지 않았던 실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연구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고 평가했다.

이미 호림박물관 소장품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제2.75' 은 국보 2백66호로 지정됐으며 '초조대장경조사연구' 라는 연구서도 나왔다.

이처럼 학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박물관측은 소장품 목록의 데이터베이스(DB)화를 서두르는 한편, 대중과 만날 기회도 자주 갖기로 했다.

이번 '특별전1' 이나 지난 1월 연 '용의 미학전' , 10월 중 열릴 '특별전2' 는 그런 목적에서 기획됐다.

3명 학예연구관 중의 한명인 이희관 연구실장은 "자주 전시회를 열어 이름을 알리는 것 말고 입지상의 악조건을 극복하는 길은 없다" 며 "학제간 연구를 활성화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으로 키울 계획이다" 고 밝혔다.

호림박물관은 개성출신 기업인 윤장섭(호림은 그의 아호)씨가 사재를 털어 82년 개관했다. 윤씨는 한국고미술사의 대가인 황수영.진홍섭.최순우씨 등의 조언을 받아 70년대 초부터 고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윤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성보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02-858-8309.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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