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본능만 좇으면 독자들 책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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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여름 휴가철 대목을 맞이했는데도 책이 안팔린다고 아우성이다.

영화.인터넷.TV로 빼앗기는 독자를 붙들기 위해 자꾸 선정적이 되고 그럴수록 더 피폐해진 독서시장의 당연한 귀결이다.

나는 그것을 이 시대의 상품논리에 독창성을 대표하는 창작물들도 지배를 받는다며 소비자인 독자를 무시하고 그 수준을 하향 조정한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또 독자를 무시하고 평론이나 광고로만 밀어붙이는 유통구조도 문제다. 한국계 미국작가 이창래씨가 작년에 '제스처 인생' 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이 출판되기 전에 나는 번역을 위해 각 나라의 출판사로 보내진 가본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쉽게 읽히거나 재미가 쏟아지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정식으로 출판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다시 읽으니 달라진 곳이 있었다. 개인적.현학적인 구절을 삭제했고 대신 폭과 깊이는 넓어졌다.

대중 흥행물과는 별도로 미국에서는 여전히 깊이 있는 작품들도 잘 팔린다. 창작물을 그냥 출판시장에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작품' 을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우선 괜찮은 작품이다 싶으면 그 분야의 권위 있는 평론가가 먼저 읽는다. 현란한 재미보다 진솔한 삶의 가치가 묻어나면서 기법이나 주제가 오늘날의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그런 작품, 사람들이 많이 읽으면 현실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윤리와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겠다 여겨지는 작품일 경우 뉴욕타임스 북 리뷰 등 매스컴이 그 책을 소개하고 서평을 싣는다.

우리 같이 특정 출판사에 소속된 평론가가 아니라 그 분야의 실력파가 정확한 해석을 내린다. 그리고 책이 나오기 전에 가본을 각 나라의 출판사에 보내 번역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니 작가들이 난해성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진정한 시장논리란 독자의 쾌락본능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선정성은 독자의 호기심은 끌 수 있지만 읽고 난 후 기분이 상한다. 쾌락이 덜하더라도 읽고 나서 기분이 좋으면 그게 좋은 책이다.

우리의 미디어와 소비사회는 개성을 존중하는 듯해도 은밀히 흡수해버리는 모순된 사회다.

책이 개인의 판단력과 윤리를 길러주지 못한다면 무엇에 의지해서 도덕을 이야기 할 것인가. 재미에만 매달릴 때, 소비자의 쾌락본능에만 맡겨질 때 문화는 제풀에 제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독서시장 구조를 보면서 솔직이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

권택영 <문화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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