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남북 장관급회담 정례화 최대 수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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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북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후속조치 실행을 위한 제1차 장관급 회담이 일정한 결실을 거두고 끝났다.

우선 두드러진 특징은 협상이 서로간의 명분이나 체면을 세우기 위한 논쟁없이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한 '윈-윈 게임' 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아직 남북 정상회담의 감격이 여전히 살아있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표면적인 고도의 정치적 채널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정상회담으로 남북 최고 지도자 사이에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합의사항을 보면 무엇보다 장관급 회담을 공식화하고 정례화하는 데 중점이 두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1항에서는 장관급 회담의 운영원칙을 세 가지에 걸쳐 명시하고 있다.

실질적인 결실을 내 놓는 것, 쉬운 문제부터 해결한다는 것 등 너무도 당연한 내용뿐이지만 장관급 회담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을 갖게 하는 남북 양쪽의 실용적 자세가 드러나고 있다.

다만 장관급 회담의 운영원칙만 제시됐을 뿐 분과별 협의회 구성 등 운영체제에 대해서는 추후 과제로 미루고 있다.

다음 장관급 회담 일자를 정한 것이나 남북 연락사무소를 재개하기로 한 것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고 하겠다.

6.15 공동선언의 제1, 2항에서 제시된 통일원칙과 관련된 합의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이는 8.15에 즈음한 남북.해외동포의 공동행사로 채우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행사 속에 통일관련 학술회의 같은 것을 포함시켜도 좋을 것이다. 통일관련 행사는 해마다 남북 당국뿐 아니라 남쪽 사회 내 정부와 민간단체, 나아가 서로 견해가 다른 민간단체들 사이에서도 갈등요인이 돼 왔다.

남북 당국이 주체가 돼 국내외의 다양한 단체들을 망라할 수 있다면 그간의 불신을 씻고 민족내부의 단합을 기하는 데 이보다 더 뜻깊은 통일행사는 없을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문제와 관련해 조총련계 동포 방문단 고향방문을 허용한 것은 이산가족 차원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조총련계 동포는 북.일 수교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지구상에 몇 안되는 무국적자들로 남아 있다. 방문사업은 북.일 수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일본 내 남북 평화공존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북한 '인민' 들의 남한 방문이 아직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북쪽에 아이덴티티를 갖는 조총련계 동포의 남한 방문은 간접적인 남북 인적교류의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기대를 모았던 경제협력과 관련해서는 경의선 철도 연결사업에 합의한 것이 크다. 경의선 철도 연결은 남북 정상회담을 상징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며 나아가 일본.중국.러시아를 잇는 동북아시아 지역 차원의 일대 평화 프로젝트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분단된 한반도를 잇는 민족적 동맥뿐 아니라 분단된 동북아시아를 잇는다는 지역 물류망이 될 수도 있다.

이 철도에 대한 미.일.중.러의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군사.안보적 성격이 지배하던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경제적이고 평화적인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물론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 등 경제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으나 이러한 의제는 장관급 회담의 운영체제가 합의되면서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담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아직 실무 레벨로 내려가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대화는 정상회담이나 마찬가지로 아직 '정치적 합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회담은 남북 정상간의 직접회담이나 다름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측 대표단이 군 관계자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 판문점을 통하지 않고 베이징(北京)을 경유한 것, 군사 직통전화 개설에 합의하지 못한 것 모두 정상회담에서 빠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남북 모두 미국과의 입장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총회에서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고 앞으로 김용순(金容淳)비서와 군 관계자의 방미를 통한 고위급 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상호 국가적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남북한.미국 사이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타협의 토대가 이미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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