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10 남아공 월드컵] 캡틴 박지성의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2009년 6월 17일 열린 2010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왼쪽)이 동점골을 넣은 뒤 포효하고 있다. 동료들이 웃으며 축하해 주고 있다. [중앙포토]

‘대∼한민국의 주장’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국가대표팀 경기를 마치면 어김없이 벤치 끝으로 향한다. 경기에 나서지 못한 후보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다. 묵묵히 자기 일만 충실히 해 왔던 박지성이지만 주장을 맡은 후부터는 소외된 선수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후배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 박지성만의 ‘수평 리더십’의 사례다. 그가 주장 완장을 처음 찬 2008년 10월(UAE전) 허정무팀은 젊은 선수들이 대거 가세한 세대교체기라 혼란스러웠다. 그때까지 대표팀은 잇따른 졸전과 무기력함에 호되게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주장이 된 박지성은 부드러운면서도 강렬하고, 보이지 않는 듯하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로 주장 임무를 다했다. 기성용(셀틱)은 이렇게 말했다. “박지성 형이 있어 두려움이 없다”고.

◆무권위·자유로움이 빚은 강력한 팀워크=박지성은 ‘나를 따르라’고 외치던, 권위주위적인 과거 주장들과 달랐다. 그가 주장을 맡은 후부터 훈련이 즐거워졌다. 선수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분위기가 낯설어 주변을 맴돌던 후배 선수들도 쉽게 대표팀과 융화됐다. 박지성은 식사 때마다 얘기를 나눌 후배들을 찾아다닌다. 후배들과 어울리며 고민을 듣고 농담하며 스스럼없이 지낸다.

박지성은 주장이 된 뒤 “경기장 안팎에서 즐겁게 경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코칭스태프에게 “훈련 스케줄은 하루 일찍 알려 달라. 버스 안에 신나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청하며 젊은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밝아진 팀 분위기는 경기장으로 이어졌다. 박지성 주장 체제 이후 대표팀은 연전연승했다.

◆후배들의 교과서=젊은 선수들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박지성을 중심으로 하나가 됐다. 이근호(주빌로 이와타)는 “지성이 형의 존재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며 신뢰를 보냈다. 기성용은 “지성이 형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나도 그 길을 걷고 싶다”면서 그를 롤 모델로 삼았다. 이청용(볼턴)은 “지성이 형을 보면서 영국에 가면 꼭 성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에게 배울 게 많다”고 예의를 갖췄다.

◆경험은 최고의 자산=박지성이 대표팀 막내 시절 함께 방을 썼던 주장 홍명보(올림픽팀 감독)는 후배가 불편할까봐 방을 비워주며 ‘무언의 배려’를 보여줬다. 일본 교토 퍼플상가 시절 주장이었던 미우라 가즈요시(요코하마 FC)에게서는 헌신하는 프로의 자세를 배웠다.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 주장이었던 판 보멀(바이에른 뮌헨)의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가슴에 인내를 새겼다. 맨유 입단 당시 주장 로이 킨(입스위치 타운 감독)으로부터는 전쟁에 임하는 장수의 자세를 터득했다.

최고의 주장들과 겪은 경험들은 남아공월드컵 때 빛을 발할 박지성 리더십의 원천이다. 박지성은 “젊은 선수들은 더 칭찬하고 격려해야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고 역설했다.

최원창 기자

주장 박지성의 말말말

■ “주장의 역할은 선수와 선수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일 뿐, 나 역시 팀의 일원일 뿐이다.” 2008년 10월 첫 주장 완장을 찬 후

■ “훈련 스케줄은 하루 일찍 알려 달라. 경기장 가는 버스 안에 신나는 음악을 틀어 달라.” 2008년 10월 UAE전 앞두고 코칭스태프에게 의견 개진

■ “우리는 여기 놀러온 게 아니라 이기러 왔다. 후회를 남기지 말자.” 2008년 11월 사우디 원정 경기를 앞두고

■ “지옥이 될지, 천국이 될지는 경기가 끝나봐야 안다.” 2009년 2월 이란 원정 때 ‘경험 많은 박지성도 지옥 맛을 볼 것’이라는 이란 대표 네쿠남의 발언에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지 편안하고 즐겁게 하자고 하는 것뿐이다.” 2009년 4월 북한전을 앞두고

■ “주장으로서 내가 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 어린 선수들의 성장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것 같다.” 2009년 6월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은 후 후배들을 칭찬하며

■ “당연히 한국이 아시아 최강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9월 호주전을 앞두고 호주 폭스스포츠와 인터뷰에서

■ “주장의 이름으로 첫 월드컵 원정 16강을 일구고 싶다.” 2010년 1월 1일 신년 인터뷰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