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감독 전창진, 꼴찌 감독 추일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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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호 16면

프로농구 KT 전창진 감독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지난 시즌 꼴찌(10위)팀 KT를 1위(2일 현재는 2위)로 끌어올렸다는 찬사와 함께. 기본에 충실하고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전 감독이 찬사를 받을수록 기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전임자인 추일승 감독이다. 추 감독은 졸지에 ‘일등할 팀을 꼴찌 만들고 떠난 감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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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감독과 전 감독은 공통점이 많다. 1963년생 토끼띠로 82학번 동기다. 둘 다 대학 졸업 후 선수생활을 접었다. 추일승은 실업농구 기아, 전창진은 삼성의 주무가 됐다. 주무란 선수단을 시중 드는 직업이다. 기자는 두 사람이 한밤에 선수들의 간식(만두·순대 같은)을 사러 외출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주무란 농구단의 ‘밑바닥’이면서 팀의 내면을 속속들이 꿸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기아와 삼성은 일류 지도자들이 거쳐간 팀이다. 삼성은 이인표-김인건, 기아는 방열-최인선. 추 감독과 전 감독은 이들을 훈습(熏習)했을 것이다. 그것이 이들의 밑천이다.

추일승은 97년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코치로 승부를 건다. 재능을 알아본 김홍배 전 농구협회 부회장의 주선으로 상무팀 코치 자리를 얻었다. 상무 시절 그의 가장 큰 업적은 2002년 농구대잔치 우승이다. 상무의 첫 우승이었다.

진가가 확인되자 프로팀에서 주목했다.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구단이 코리아텐더(현재 KT)다.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존립이 위태로운 팀이었지만 추 감독은 과감히 뛰어든다. 2003년의 일이다. 그는 이후 6시즌 동안 정규리그 7-4-4-3-8-10위를 기록했다. 시즌 중 1위에 오른 적도 자주 있다.

플레이오프 진출 확률 50%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2006~2007시즌엔 플레이오프 4강에 갔다. 꼴찌? 세 차례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유재학 모비스 감독도 99~2000시즌 꼴찌를 했다. 전창진 감독도 꼴찌와 다름없는 9위까지 추락(2001~2002시즌)한 적이 있다.

스포츠팀 감독의 운명은 연료를 가득 채운 채 이륙한 비행기와 같다. 충만한 의욕과 창의력은 시간이 갈수록 준다. 양력을 잃은 비행기는 고도를 낮춘다. 다시 떠오르기 어렵다. 이럴 때 구단은 ‘분위기 쇄신’을 위해 감독을 바꾼다. 적절한 시기에 공중급유(수퍼스타의 영입 또는 강력한 외국인 선수의 보강 등)의 행운을 누리는 감독은 드물다.

지휘봉을 놓은 감독들은 마음의 병을 앓는다.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추 감독은 강한 내면의 소유자다. 그는 감독으로 일하는 동안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두 권의 농구이론서를 썼다. 지금은 MBC ESPN에서 해설을 맡고 있다. 그의 해설은 기본에 충실하고, 선수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전창진 감독이 듣는 찬사와 같다!).

미디어는 늘 드라마를 원하고 극적인 대비를 즐긴다. 성공의 그늘은 짙게 묘사하고, 승리자를 위해 패배자를 찾아낸다. 그래서 거의 같은 길을 걸어온 친구가 한 팀의 전·후임자로 명암 속에 놓였다. 전 감독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것이다. 추 감독은 ‘소’라는 별명처럼 묵묵히, 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리라. 에너지가 충전되면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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