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 대학 새내기들에게 권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간디가 그랬다죠. “오늘 죽을 것처럼 행동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신년 기획은 대학 진학을 앞둔 젊은이들을 위한 책으로 꾸렸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교수 세 분께 부탁했습니다. 재미나 실리보다는 차분하게 지적 토대를 닦는 데 도움이 될 책들입니다.

그러니 지적 호기심이 있다면 굳이 대학 새내기가 아니라도 들춰볼 만합니다. <편집자 주>

인문『변신 이야기』
신과 인간 사이 사랑얘기 서양문화에 깊은 영향

남에게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은 자칫 실례일 수 있다. 남이 어떤 취향이 있는지, 어떤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지 알지 못하면서 선뜻 저 좋아하는 책을 들이밀 수는 없다. 사실 무슨 책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읽어야 제맛이지, 그렇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후다닥 읽고 보고서를 써야 하든지, 혹은 윗분들이 시켜서 읽으면 갑자기 재미가 뚝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요즘 많은 대학생이 원체 공사 다망하여 옛날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니, 재미있게 읽음직한 책, 언젠가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 혹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을 몇 권 권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깊은 책이다. 서양 문학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이 책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후대의 많은 문학 작품이나 회화, 조각 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놓고 신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쉼없이 읽게 될 것이다.

근현대 세계의 형성에 대해 진지하게 살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에릭 홉스봄의 ‘근현대사 4부작’을 권하고 싶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이 네 권은 18세기 말에서 20세기까지 이르는 근현대사의 다양하고 역동적인 흐름을 대가다운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의 세계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꿰뚫어보는 거시적 시각을 갖추고자 한다면 이 정도의 책들을 독파하는 수고는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탁월한 소설 작품을 읽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요즘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읽지 말라 해도 읽지만 귄터 그라스 같은 작가의 소설은 그리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다. 『양철북』은 내가 대학 시절에 가장 재미있게, 그리고 가장 흥미롭게 읽은 소설 중 하나이다.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여 어린 꼬마의 모습을 유지하는 특이한 주인공의 시각으로 2차대전 전후 독일 사회의 무기력한 소시민층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이 소설은 유구한 독일문학 전통이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양 사상의 알파요 오메가인 『논어』는 언젠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과학에 대한 가장 편안한 입문서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대단히 유용한 책으로 권하고 싶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 자유전공학부·서양사학과

[1]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이윤기 옮김, 민음사)

[2]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정도영 외 옮김, 한길사), 『극단의 시대』 (이용우 옮김,까치글방)

[3] 귄터 그라스, 『양철북』 (장희창 옮김, 민음사)

[4] 공자, 『논어』

[5]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사회 『세계는 평평하다』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나 글로벌 시대 생존법 분석

오늘날 세계사회는 물론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뭘까. 세계화와 정보사회가 바로 그 양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대전환의 문턱 위에 이미 올라서 있다.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세계화와 정보사회는,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그 콘텐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낯설고도 놀라운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세계화를 다룬 책들은 수없이 많다. 그 가운데 나는 미국 뉴욕타임스를 대표하는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의 『세계는 평평하다』를 추천하고 싶다. 프리드먼은 풍부한 사례와 자료를 활용해 세계화의 21세기적 버전을 종횡무진 분석한다. 국가와 기업을 넘어서 이제는 개인이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가의 의문에서부터 현기증 날 정도로 질주하는 세계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과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세계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제공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바로 새내기 여러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해 성인이 된 본격적인 디지털 세대, 또는 넷세대나 N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서가 바로 돈 탭스콧의 『디지털 네이티브』다. 탭스콧은 넷세대는 누구이고, 그들이 어떻게 제도와 사회를 바꾸고 있는가의 질문을 던진다.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함께 다른 나라의 넷세대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분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세계화 및 정보사회와 더불어 환경 문제는 오늘날 세계사회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최근 코펜하겐 회의에서 볼 수 있듯 인류는 기후를 포함한 환경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 변화의 정치학』은 기후 위기를 둘러싼 쟁점들을 다각도로 검토함으로써 환경 위기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녹색성장, 녹색사회, 녹색정치 등 이른바 ‘녹색’은 우리 시대의 미래를 판독하는 코드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바로 이 녹색에 대한 풍부한 정치학적, 사회학적 통찰을 안겨준다.

최장집의 『민중에서 시민으로』와 박세일의 『대한민국 국가전략』도 권하고 싶다. 최장집과 박세일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 민주화론과 선진화론을 대표하는 학자다. 대학에 들어와 성년이 된 만큼 이 책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색해 보는 것도 새내기로서는 뜻 깊은 일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사회학과

[1] 토마스 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 (김상철 옮김, 창해)

[2] 돈 탭스콧, 『디지털 네이티브』 (이진원 옮김, 비즈니스북스)

[3] 앤서니 기든스, 『기후 변화의 정치학』 (홍욱희 옮김, 에코리브르)

[4] 최장집, 『민중에서 시민으로』 (돌베개)

[5] 박세일, 『대한민국 국가전략』 ( 21세기북스)


과학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우주 자연 생명 의식 … 과학의 지형도 그려보라

돌이켜 보건대, 대학입시가 끝나고 세상에 나가길 기다리던 그 해 겨울 만큼 홀가분하면서도 불안했던 방학도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두어 달 남짓. 하고 싶은 것들이 어찌나 많고, 읽고 싶은 책들은 왜 또 그렇게 많았는지. 그러나 너무 초조해하지 마시라. 이 짧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든 봄이 되면 아쉬움만 남을지니, 그저 담대하게 계획을 세워보시길.

이 시기는 교과서의 딱딱한 수식에서 벗어나, 자연에 대한 과학자들의 통찰력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과학의 지형도를 그려주는 책을 읽어보시라. ‘과목’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에 대한 지적 탐구로서의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재치있는 문장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이를 위한 더없이 좋은 지침서다.

둘째, 과학자들의 논쟁과 진실공방은 과학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과학-종교 논쟁, 사회생물학 논쟁, 진화론 논쟁, 인간 본성-양육 논쟁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은 인간의 특징을 타고난 생물학적 본성만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위험하듯, 양육과 환경으로 결정된다는 태도 또한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인간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안목’을 키우는데 소중한 균형추가 될 것이다.

셋째, 과학도서의 가장 큰 매력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는 과학기술에 대한 장밋빛 비전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 과격한 과학주의자의 상상력을 통해 과학기술이 이끌 미래사회를 상상해 보는 즐거움을 맛보시라.

넷째, 지구온난화와 식량·기아 문제 등 환경이슈가 전지구적 화두로 자리잡고 있는 오늘날, 이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앨런 와이즈만의 『인간없는 세상』이나 프레드 싱거의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는 이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끝으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에 대한 탐구심을 잃지 않고 평생을 공부하며 살았던 과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지적인 자극을 받길 권한다. 그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단연 『러셀 자서전』이다. 그가 평생을 간직했던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은 ‘청춘의 삶’이 가져야 할 유익한 열정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바이오·뇌공학과

[1]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덕환 옮김, 까치글방)

[2] 스티븐 핑거, 『빈 서판』 (김한영 옮김, 사이언스 북스)

[3]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김명남·장시형 옮김,김영사)

[4] 앨런 와이즈만, 『인간없는 세상』 (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 프레드 싱거·데이스 에이버리,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김민정 옮김, 동아시아)

[5] 버트런드 러셀, 『러셀 자서전 』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