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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금융 대 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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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경제정책은 '금융' 일색이며 '산업' 은 오간 데가 없다. 산업자원부에서 산업정책 혹은 산업경쟁력 강화정책을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 전체의 힘이 실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언론도 온통 금융.재정 정책적 시각으로만 처리되고 있다. 대우해체, 삼성자동차 처분, 공기업민영화, 기간산업의 외국인 지분 문제 등 경쟁력 측면에서의 산업정책은 뒷전이다.

운 좋게도 반도체.철강 등 기간제조업이 잘되고 있으니 망정이지 대외여건이 나빠져 이들이 활력을 잃게 되면 수출도 남북협력도 일장춘몽이다.

*** '산업' 경시풍조 만연

산업을 홀대하며 천시하는 사고 뒤에는 '미국 신경제 모방론' '제조업 종말론' '지식기반 경제론' 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이 세가지 모두 잘못 이해되고 있다.

첫째, 미국의 '신경제' 가 10년 이상 호황이니 우리도 이를 본떠 금융과 벤처만 일으키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물론 미국은 금융과 벤처로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고, 기축통화국으로서 만성적 국제수지 역조도 금융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실리콘 밸리는 그 하나만으로도 세계경제권 중 제12위에 랭크되며, 거기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시스코사의 라우터, 인텔사의 CPU, 오러클사의 데이터베이스 같은 핵심기술이 단기간에 제조업을 능가하는 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아직 핵심역량 없이 '제1차 모사생산' 에 머무르고 있는 단계에서 주가조작으로 투기바람을 일으켜서는 반짝경기만 있을 뿐이다.

둘째, 자원.노동.자본에 의존하는 굴뚝산업은 이제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포화상태에 빠져 서비스업계에 비해 시장과 수요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 또한 착각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반도체.철강.자동차.조선 등 굴뚝 기간중공업이 우리의 목숨줄이다.

수출은 물론 철강 하나만으로도 또 LCD 전자제품 하나만으로도 연 1조수천억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고 인간 생활에 이들 제품이 필요한 시장과 수요도 건재하게 마련이다.

이들 산업도 다른 지식산업과 함께 지식화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주력 수출상품인 자동차.OA기기.정밀기계.산업기계 등 기계류가 일본경제와 무역흑자의 뼈대이며, 우리경제가 호황일수록 대일 무역역조가 더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셋째 '지식기반경제' '디지털경제' '소프트경제' '서비스경제' 등 새 용어들의 오해다.

"미국의 경우 국민소득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상회한다" 라든가, "미국 직업 중 80%가 두뇌를 쓰고 있다" 라든가, "세계 부의 60% 이상이 인간자본으로 구성돼 있다" 는 등 통계수치가 일반화하고 있다.

요즘 흔히 쓰는 '지식노동자' 라 하면 교육.광고.건축.R&D.판매.영상.회계.재무.법률.컨설팅.건강관리.사회복지.출판.은행.교회.부동산업.정부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적자본' 이라 할 때는 브랜드.로열티.라이선스.리더십.노하우.저작권.특허권.기업문화.경영철학 등을 이름한다.

이들 지식은 물론 앞으로 빠른 속도로 그 중요성을 더해 갈 것이다. 그러나 제조업과 직접 연관되지 않는 지식은 세계 굴지의 경쟁력을 지니지 않는 한 홀로 서기 힘들며, 대부분의 지식은 그 성격상 제조업을 바탕으로 그 위에 서있는 것들이다.

*** 두 부문 함께 커야

이제는 80년대와 달리 제조업과 재화생산 자체가 빠르게 지식노동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e-비즈니스, B2B, B2C를 모르고선 경쟁에서 배겨날 수 없다. 조립공정과 공장생산 라인만 해도 고숙련 기술자로 대체 중에 있다. 고객서비스.경쟁전략.R&D.디자인.시장개척기법 등은 더 높은 지식과 경험을 요한다.

넷째, 디지털경제의 뜻도 바로 알아야한다. 디지털의 속성은 광속성.가상화.인터네킹.수렴성.즉각성.세계성 등이고, 무엇보다 빛의 속도로 많은 정보를 어디에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그 힘이다.

그러나 콘텐츠 즉 정보의 내용이 문제이고 이것이 아날로그이며, 아날로그의 축적된 지식과 창의력 없이는 디지털의 힘도 무력해진다.

금융.증권.벤처로만 치닫는 지금의 경제정책은 또 하나의 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 금융과 산업, 산업과 지식의 '쌍두마차형' 발전이 소망스럽다.

박우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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