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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민심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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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병석(경북 포항북) 의원은 추석 전날과 당일, 지역구에서 하루 12시간씩 영업용 택시를 몰며 '현장체험'을 했다. 그가 번 돈은 첫날 1만8000원, 둘째날 2만4000원. 하루 5만8000원인 회사 입금액을 채우기엔 턱도 없는 액수다. 이 의원은 "3년 전만 해도 근근이 입금액은 채울 수 있었는데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며 "특히 택시기사.승객 중에 '세상을 뒤엎어 버리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 신분을 밝히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열린우리당 김춘진(전북 고창-부안) 의원은 "노인 요양시설을 늘려 달라"는 요청을 많이 들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고향을 떠난 자녀들이 "도저히 우리가 (노부모를) 모셔갈 형편이 안 되니 그런 시설이 꼭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 지역구를 찾은 여야 의원들은 하나같이 송편보다 욕을 더 많이 먹고 돌아왔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민생 경제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박병석(대전 서갑)의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더라"며 "만나는 사람 열에 아홉은 경제 얘기뿐"이라고 추석 민심을 전했다. 한나라당 남경필(경기 수원 팔달)의원은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에서 기업 할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특히 민생 현장을 돌아본 여야 의원들은 "설마 했는데 경제가 이 지경인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구의 재래시장을 찾았던 한나라당 심재철(경기 안양 동안을)의원은 아예 고개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상인 대부분이 "매상이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울분을 토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올해 대학을 졸업했는데 아직도 놀고 있다"는 부모의 탄식도 들었다고 한다.

연휴 기간에 인사차 주요 택시 승강장을 돌아본 열린우리당 안민석(경기 오산)의원도 낭패를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승객은 오간 데 없고 빈 택시만 줄지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하루 종일 혼나느라 정신없었다"며 "민심이 완전히 바닥"이라고 당혹감을 표시했다.

◆ 영남.강원 "보안법 사수해야"=경제 문제에 대해선 여야는 물론 지역.세대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9월 정기국회 내내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했던 각종 정치 이슈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나라당이 다수인 영남.강원권에서 "폐지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나라당 이인기(경북 고령-성주-칠곡)의원은 "보안법을 없앨 경우 구국운동에 나서겠다는 사람이 많았다"고까지 했다. 보안법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보였던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한나라당의 부산 출신 한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 대표가 외로울 테니 많이 도와 주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러나 보안법 사태 이후 이번 추석엔 이런 얘기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반면 경북의 다른 한나라당 의원은 "'박 대표가 잘했든 못했든 일단 뽑았으면 뭉치고 단합해야지 흔드는 것은 잘못'이라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 과거사 문제 "여론은 우리 편"=과거사 논란에 대해 여야는 서로 국민이 자신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의원들은 "보안법 폐지에 비해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여론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비서관과 함께 3일간 거리 유세하듯 지역구를 발로 뛰었다는 열린우리당 백원우(경기 시흥갑)의원은 "특히 40대 중반 이하에서 긍정적 여론이 강했다"고 했다. 반면 30대 후반인 한나라당 정문헌(강원 속초-고성-양양)의원은 "초등학교 동문 체육대회에 갔더니 이구동성으로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과거사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 모두 불만인 수도 이전 공방=양승조(충남 천안갑)의원 등 충청권의 여당 의원들은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를 놓고 (발목을 잡는) 한나라당에 분개하는 주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러다 일이 잘못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혁규(경기 광주)의원 등 다른 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멀쩡한 '수도꼭지'를 바꾸겠다는 거냐고들 한다"고 비판적 목소리를 전했다. 열린우리당 우원식(서울 노원을) 의원은 "아직까지 서울에선 수도 이전에 대한 불만이 많다"며 "그러나 서울시의 관제데모 의혹에 대해선 분개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김선하.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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