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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연재 자전소설 무대 샛강 찾은 황석영-민정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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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자전소설의 초반 무대인 서울 여의도 샛강을 찾은 소설가 황석영씨(左)와 삽화를 맡은 서양화가 민정기씨. 황씨는 "자전소설을 읽다 보면 내 소설의 ‘원료’를 낱낱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연 기자

내일부터 본지에 소설가 황석영(61)씨의 자전소설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가 연재된다. 영국에 체류 중인 황씨는 지난달 말 일시 귀국해 연재소설 삽화를 맡은 서양화가 민정기(55)씨와 함께 샛강을 찾았다. 서울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의 샛강은 황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의 현장. "이 샛강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다 저절로 수영을 배웠죠. 톰 소여나 허클베리 핀의 소설 속 생활과 다르지 않은 나날이었어요." 황씨가 감회 어린 목소리로 말을 건네자 민씨는 "샛강이 매력적인데요. 회화적으로 호감이 가는 곳입니다"라고 답했다. 황씨는 "예전의 샛강은 지금 폭의 서너 배 이상 넓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의 샛강은 올림픽대로와 여의도 사이에 조성된 녹지 사이를 흐르는 폭 3~4m의 수로(水路) 수준이지만, 옛날에는 녹지 전체 넓이까지 품에 안은 제법 넓은 강이었다는 것.

영등포는 황씨가 부모를 따라 월남해 1947년 정착한 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합쳐 10여년을 보낸 곳이다. 자연히 여의도 샛강은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40여년 전 모습은 이렇다 할 게 남아 있을 리 없지만, 그는 쉴새없이 기억을 풀어내며 열정적으로 '당시'를 얘기했다.

"지금 올림픽대로 자리가 예전에는 둑이었고, 그 위로 길이 나 있었다. 둑길을 따라 한강 상류로 거슬러 가면 모래사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조개도 잡고 고기도 잡았지."

'모래사장 놀이터'는 황씨가 2001년 출간한 자전적 동화집 '모랫말 아이들'을 통해 한차례 소개됐다. '모랫말 아이들'에는 거지 춘근이, 상이군인 고문관 등 황씨의 소설적 분신인 주인공 수남이가 한국전쟁 전후 또래들과 함께 체험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녹아 있다. 좌.우익의 폭력 대결, 곡마단이 들어와 축제 같던 마을 풍경 등 당시 사회상도 엿보인다.

황씨는 "아닌 게 아니라 소설 초반 유년 시절은 '모랫말 아이들'을 심화시켜 길게 쓴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씨가 "선생님 인생의 각 시기를 소설 속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황씨는 "유년에서 청년기까지를 한권반 분량에 담아내고, 베트남전 체험을 반권 분량, 남은 한권엔 제대 후 문단에 나와 80년 광주를 겪고 방북하기까지를 담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샛강 지역을 벗어나 영등포와 그 너머로 옮겨갔다.

황씨는 "예전 영등포 본바닥은 일제가 조성한 산업도시로, 공장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고 사무원이 넘쳐났던 굉장히 활력 있는 지역이었다"고 소개했다. 또 "영등포 역전에서 시장까지 이어지는 중심가에 일제시대부터 아마 명보극장이라는 극장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는 사무라이극이 공연됐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도 어린 시절 그곳에서 악극단 공연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황씨의 영등포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의 가족은 일본식으로 똑같이 지어 분양한 '영단주택'에 살았다. 아버지는 한동안 한국전력의 전신인 경전(京電)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공단에서 사무원 일을 했는데, 여공 누나들이 인사 청탁을 하기 위해 심심치 않게 집으로 찾아왔었다. 당시 여공들은 검은 비로드 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의 무척 세련된 계층이었다. 황씨는 '마누라는 없어도 되지만 장화는 있어야 산다'고 할 만큼 비만 오면 땅이 질척거려 '진등포'라고도 불리던 영등포 바닥을 벗어나 오목내로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또 전쟁 때는 갱맹이로 피란갔다. 오목내는 지금의 목동 오목교 부근, 갱맹이는 경기도 광명시를 말한다. 그는 "해방 직후 아마 노동자들과 구사대들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 모든 세세한 기억들을 소설 속에 고스란히 풀어 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직후의 유년에 관한 한 당시 풍속과 일상을 손바닥 보듯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서보다 자상한 역사 서술, 미시사 수준의 회고담을 쓰겠다"는 것이다.

황씨는 "결국 소설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얘기랄까, 근대화 과정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음으로 양으로 동참해 만들어 온 우리 시대를 조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기 위해 온갖 역사적 사건과 맥락을 다 짚고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삶은 자체가 살아있는 근대사다.

민씨는 황씨의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손님'의 신문 연재 때에도 삽화를 그려 누구보다 황씨를 잘 안다. 민씨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얘기들도 쓸 계획이냐"고 묻자 황씨는 "그런 것도 있을 거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만들 때나 방북해 만났던 김일성 주석과 관련된 재미있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황씨는 "하지만 사람들을 실명으로 거론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말이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황씨 자신도 가명으로 나온다. "그래도 읽어 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자가 끼어들어 "민씨의 삽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황씨에게 물었다. 황씨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와 편하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서정적"이라고 답했다.

민씨는 "이전에 작업했던 대로 판화 기법 중 하나인 드라이포인트로 삽화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이 밀도가 있고 깊이가 있으면서 부드러워 시대적인 내용이 담긴 황 선생의 소설에 잘 맞는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황씨가 "내 산문은 워낙 영화적이어서 이미지를 잡아내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농을 건넸다.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과 '장길산'이 각각 영화.TV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을 빗댄 말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씨는 황씨의 동의도 없이 중편소설 '한씨연대기'의 소설 장면을 형상화한 판화 13점을 현실 비판적인 미술동인 '현실과 발언'전에 출품했다. 민씨는 지금은 작고한 판화가 오윤과 함께 뒤늦게 이실직고하려고 황씨를 찾아갔지만 황씨는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는 중이었고, 두 화가도 함께 취해 결국 사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샛강을 뒤로 하고 헤어지면서 황씨가 민씨에게 "한세월 또 보냅시다"고 말했다. 민씨는 "차분하게 그리겠다"고 화답했다.

신준봉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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