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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정치] 예결위 점거 민주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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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즘 민주당 의원들의 호주머니엔 감기약이 그득합니다. 지난 17일 국회 예결위원회 회의장을 점거한 이래 근 보름 동안 냉기가 올라오는 회의장 바닥에서 선잠을 자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회의장은 난방은 되지만, 창문이 없고 환기시설이 열악해 건조하기 짝이 없답니다. 29일 밤을 회의장에서 보낸 이미경 사무총장은 “아침에 일어나면 목구멍이 칼칼해 기분이 고약하다”고 전했습니다. 회의장 바닥에 깔린 카펫도 알레르기 증세가 있는 의원들에겐 스트레스입니다.

매일 서너 명씩 찾아와 “이제 그만 나와 회의를 엽시다”고 외치고 가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이들의 신경을 거스릅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의원들의 ‘대목’인 연말 지역구 활동을 봉쇄당한 겁니다. 28일 저녁 농성조였던 양승조 의원은 “이날 하루만도 이·통장 수백 명이 나오는 송년모임과, 다니던 특수대학원 동문회를 빠져야 했다 ”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농성조 의원들에게 유일한 위안거리는 동료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구해와 돌리는 특산 먹을거리입니다. 강진·신안의 유선호·이윤석 의원이 홍어회, 여수의 주승용 의원이 서대회, 남원 이강래 원내대표가 추어탕, 군산 강봉균 의원이 전주쌈밥을 돌리는 등 별미 음식이 많은 호남 쪽 의원들이 맹활약했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의원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모은 건 익산 조배숙 의원이 돌린 약밥과 목포 박지원 의원이 돌린 민어회였다고 합니다. 강창일·김재윤·김우남 의원 등 제주도 출신 의원 3명은 경쟁하듯 감귤 상자를 돌려 의원·당직자들 간에 “누구 귤이 가장 맛있나”라는 품평회가 열리기도 했다는군요.

점거 초기엔 천정배·장세환 의원 등 의원직 사퇴서를 던진 3명과 투병 중인 이용삼 의원 등을 제외한 77명이 하루 3교대로 8~9명씩 농성조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예산처리 시한이 가까워진 29일부터는 점거조 숫자를 20여 명씩으로 늘려, 누구나 하루 한 번씩은 농성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올 들어 세 차례나 장기농성이 이어지면서 당번을 빼먹는 의원들이 느는 등 분위기가 적잖이 느슨해졌다”(박지원 의원)는 말이 나옵니다. ‘점거의 달인’ 민주당 의원들도 거듭되는 농성정치에 지치긴 지쳤나 봅니다. 내년부턴 이 같은 고생 없는 정상적인 국회를 기대해 봅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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