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예산안 본격 대치 시작 … “밤새울 준비 하고 오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촉즉발이다.”

올해를 불과 30여 시간 남겨둔 시점에서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한나라당 쪽도 다를 바 없었다. 실제 30일 여야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언제든 예산안 등을 강행 처리할 수 있다고 불안해했고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실력 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과정에서 오후 2시에 예정됐던 본회의가 3시간40여 분 지연돼 열리기도 했다.

30일 예산안 강행 처리 가능성을 시사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左).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右). [김형수 기자]

◆문자메시지 동원령 vs 보좌진 소집령=여야는 각자 동원체제를 가동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낮 소속 의원 전원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밤새울 준비를 하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예산안 강행처리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당 주변에선 “오늘부터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민주당은 오후 의원 보좌진에게 국회 본관으로 오라는 지시를 했다. 한나라당의 본회의장 점거설이 돌자 내린 조치였다. 14일째 점거 중인 예결위회의장엔 의원들을 증파했다. “소속 의원 전원이 무기한 예결위회의장을 점거하겠다”는 것이다.

한때 충돌하기도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오후 8시30분쯤 “법사위는 오늘 밤 12시까지 예산 부수 법안을 비롯한 주요 법안을 심사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비슷한 시간대 법사위에서 한나라당 간사인 장윤석 의원이 예산 부수 법안을 20여 건 상정했다. 장 간사는 “세 차례나 회의를 열자고 했으나 유선호 위원장이 거부해 적법하게 사회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위원장 등 민주당은 “무효”라며 크게 반발했다. 한때 양 진영이 뒤엉켜 실랑이를 벌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도 더해 갔다. 한나라당은 자정 예결위를 소집했다. 민주당에서도 “한나라당이 밤 12시에 쳐들어올 수도 있어 대기 중”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31일 이른 아침인 오전 7시 의원총회 일정을 잡았다.

◆공무원 연금법 처리=전날 의장석 ‘점거’를 선언한 김 의장은 이날도 의장석을 지켰다. 여야 인사들은 번갈아 김 의장을 찾았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전날 오후 11시 의원총회를 마치고 본회의장에 들러 김 의장과 1분 정도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정 대표가 김 의장과 대면한 건 7월 미디어법 처리 이후 처음이었다.

정운찬 총리도 의장석을 찾았다. 정 총리는 “의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 총리는 민주당 지도부도 방문하려 했으나 의원 총회 중이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을 현재보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는 내용의 공무원 연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밖에 최고 구간에 한해 2년간 인하를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인세법 개정안 등 3건의 예산 부수법안을 처리했다.

권호·허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