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금융 부실 방치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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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금융 부실에 대한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잠재 부실채권이 정부 공식집계보다 20조~30조원이나 많은 1백10조~1백20조원에 이르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20%나 된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기업.금융 부실이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함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정부측 주장처럼 다소 과장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실에 관한 한 한경연 분석은 정부 설명보다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게다가 한경연측은 "그나마 선진국에 비해 느슨하게 잡은 것이고, 회사채 등을 포함하면 총 부실은 1백50조원에 이른다" 고 주장하고 있어 더욱 위기감을 느낀다.

기업 부실은 바로 금융 부실→국가신인도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도 이런 경고를 외면하려만 들지 말고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굳이 이런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히 따져보면 '총체적 부실'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만하다. 지난 2년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다는 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한심할 정도다.

한국은행 분석결과 금리는 IMF체제 이전보다 떨어지고 부채비율이 낮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이자부담은 더 늘었다니, 결국 구조조정이 겉치레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기술개발이 제대로 되길 했나. 이런 실력으로 세계 시장은 물론 개방된 국내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지 걱정이다.

정부도 믿음을 주지도,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채권투자펀드 등 각종 자금시장 안정책을 잇따라 내놓지만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되레 깊어만 간다. 미봉과 땜질 처방으로 신뢰를 잃었고 리더십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매달려 경제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고, 개인 역시 IMF사태를 까마득히 잊고 흥청망청하는 분위기다. 대외여건도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우호적인 게 없다.

사정이 이런데, 단지 외환보유액이 여유있고 성장률이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위기가 아니란 말인가. 오죽했으면 기업을 대변해야 할 한경연이 스스로에게 불리한 이런 자료를 공개했겠는가.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이다. 정부의 결단만이 남았을 뿐이다. 모든 기업을 껴안고 갈 수는 없다.

정말 안 되는 기업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그래야 금융도 살고 국가 경제도 산다. 금융부실도 투명하게 실상을 공개하고 공적자금을 조성, 더 늦기 전에 과감히 대처해야 한다.

우리가 국민 부담일 수도 있는 공적자금을 서둘러, 충분히 조성하자는 것은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야 한국 경제 전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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