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금융시장 안정기능 중앙은행에 맡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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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금융경색 현상이 지속하면서 재정경제부나 금융감독위는 채권투자기금 조성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각종 묘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국은 과거와 같은 관치금융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심지어 금융노조까지 관치금융 청산을 외치고, 국회에서는 관치금융 청산특별법을 만들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관치금융 현상은 과거의 관행을 탈피하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정책 운용체제에 큰 결함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관치금융 청산을 법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적으로 재경부는 화폐.금융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총괄할 수 있고, 금감위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유지할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금감위까지도 거시적으로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금융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와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이라는 두 목표는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서는 개별 금융기관의 퇴출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금융시장에 대한 여파를 지나치게 걱정해 소극적인 전략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자칫 금융부실을 누적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양산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재경부나 금감위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수단인 유동성 조절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동성 창출 기능이 없는 재경부나 금감위가 거시금융의 안정을 추구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은행의 건전성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채권시장 안정기금이나 채권투자기금을 조성하면서 강제로 은행을 동원하게 되는 관치금융 현상을 불가피하게 한다.

이러한 기금이나 재정을 통한 공적자금의 활용은 대체로 본원적 유동성 창출을 수반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 전체로 보면 실질적인 유동성 증가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단지 금융주체.시장간의 단순 자금이전을 초래할 뿐이다.

그동안의 여러 묘안에 의한 금융시장안정책이 단기적인 효과밖에 못내고 있는 이유도 현재의 금융정책 운용체제가 관치금융과 금융정책의 난맥상을 조장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곡에서 금융정책을 해방시키려면 금감위는 원래의 기능에 맞게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안전성 유지와 부실기관의 청산 등에 충실하고,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 기능은 본원통화 창출기능을 갖는 한국은행에 맡겨야 한다.

중앙은행이 유동성 조절을 통해 금융시장의 경색과 과열을 '간접적' 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만 재경부나 금감위가 행정력을 앞세워 금융기관들에 자금공급 여부를 명령할 필요성이 낮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면 자연스럽게 관치금융이 설 땅도 소멸될 수 있다. 이러한 새 패러다임 속에서 정부는 엄격한 금융논리하에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면 될 것이고, 이에 따른 금융경색이나 혼란 등은 한국은행이 '최종 대부자' 기능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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