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 개헌 공론화 물밑 조율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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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2일 이원창(李元昌.전국구)의원을 여러 차례 찾았다.

언론특보인 李의원이 이날 오전 "아직 개헌을 논의할 시기가 아니나 때가 되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게 李총재의 인식" 이라고 밝힌 것이 '오해를 살 수 있다' 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李총재는 李의원과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을 통해 '4년 중임제 검토' 대목을 취소토록 했다. 이들은 대신 "어떤 경우에도 내각제 개헌은 안된다" "정.부통령제 도입은 불필요하다" 는 얘기를 덧붙였다.

주변 인사들의 이런 제스처와 관계없이 李총재는 이미 개헌문제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에 대한 깊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헌법의 영토조항(제3조)개정은 당 남북관계특위(위원장 李世基)에서, 권력구조 개편은 드러나지 않은 별도 조직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 고위 당직자가 귀띔했다.

李총재의 개헌전략에 관여하고 있는 관계자는 "적절한 이슈 관리가 된다면 4년 중임제 개헌론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정국 주도권을 잡아가는 효과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고 효용성을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李총재가 이 문제를 앞장서 제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8년 장기집권' 을 욕심낸다는 이미지로 국민에게 비춰질 것이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내각제 개헌은 3金씨(김대중-김영삼-김종필)의 영향력을 유지시켜 주기 때문에, 정.부통령제는 김덕룡부총재 등 당내 도전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줄 수 있기 때문에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李총재측의 조심스런 개헌론 제기에 청와대와 민주당쪽은 "(개헌론의)봇물이 터졌다" 면서도 "여권이 먼저 나서는 일은 없을 것" 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반 이상 남았는데 레임덕(대통령의 권력누수)이 일어날 수 있다" 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4년 중임-정부통령제 개헌이 정권 재창출에 나쁘지 않다" 고 분석했다. "특히 정.부통령제는 영.호남 출신을 러닝메이트로 묶어 지역벽을 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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