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5% 기술장벽도 넘어 아부다비 감동 이어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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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상 첫 원전 수출이 가져온 감동이 좀체 가시지 않고 있다. 세밑 아부다비에서 날아든 낭보에 온 국민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묵묵히 갈고 닦은 기술력에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련한 정상외교가 맞물리면서 50년 원전 역사의 신기원을 이룬 것이다.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기까지 숨겨진 일화들이 공개되면서 감동을 더한다. 세계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한 만큼 차세대 성장동력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기세를 몰아 터키·요르단에도 원전 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제 아랍에미리트(UAE)에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원전을 차질 없이 건설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전 수주 과정에서 다짐한 경제 전 분야에 걸친 장기적 협력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과제다. 한국은 UAE에서 매년 130억 달러어치의 원유를 도입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은 400억 달러 규모의 원전을 수출한다. 에너지 협력 차원만 봐도 양국이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할 여지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특히 중동은 세계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다. 그런 지역에서 UAE가 처음 원전을 세우면서 한국을 파트너로 선택한 의미는 남다르다. 우리의 생명줄인 에너지 안보를 위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원전을 수주한 비결은 가격경쟁력과 안정적인 운용 능력 덕분이다. 하지만 세계 원전 시장에서 확실한 위치를 확보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한국에 원전 기술을 가르쳐 준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이번에 하청업체로 참여한다고 자랑하는 것부터 쑥스럽다. 원전 설비의 3대 핵심 기술은 원자로냉각제펌프(RCP), 원전설계핵심코드, 원전제어계측장치(MMIS) 등이다. 이들은 전체 기술의 5%에 불과하지만 원전 주 기기 설비공사의 48%를 차지하는 핵심 분야다. 이번에도 원천 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와 일본 도시바가 이들 3대 핵심 분야를 도맡게 된다. 자칫 원전 수출이 속 빈 강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와 두산중공업, 한국전력기술은 내실을 기하기 위해 2012년까지 이들 품목의 완전 국산화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까다로운 시험과 검증을 통과해야 하고, 독자적인 기술의 안정성을 확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여전히 힘든 고비들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사용후 핵연료를 평화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오래된 숙제다. 안정적인 핵 사이클을 완성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우리도 일본처럼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야 완전한 턴키 방식의 원전 수출이 가능하다.

한국의 원전 기술진들은 그동안 온갖 불가능을 뚫고 세계 여섯 번째로 원전을 수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수주 확률 5%에서 출발해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최근에는 원전 발주 국가들이 핵심 기술을 이전하라고 요구하는 게 대세다. 앞으로 1조 달러 규모의 원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또다시 불가능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의 원전 수주전에서 연속적인 승전보를 울리려면 결코 우회할 수 없는 길이다. 그것이 아부다비에서 건너온 이 진한 감동을 계속 이어가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