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야기] 수학자와 과일 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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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8년 미국 미시간대 수학과 헤일즈 교수는 '3차원 공 쌓기 문제' 를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문제는 '케플러의 예상'으로 더 잘 알려진 문제. 케플러는 1609년 증명 없이 다음과 같은 예상을 했다.

"3차원 공간에 똑같은 공을 빈틈이 가장 적도록 쌓는 방법은 <그림> 처럼 쌓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 예상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는 데 거의 4백년이나 걸린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동서고금의 모든 과일장수들이 사과를 쌓을 때 이런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도 헤일즈의 결과를 전하면서 "과일장수들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수학이 증명했다" 고 제목을 달았다.

그러나 사과를 쌓는 방법은 무한히 많고, 그 무한히 많은 방법을 다 알지도 못한다.

사과가 잘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쌓는 데 더 관심이 많았을 과일장수들이 찾아낸 이 방법이 가장 빈틈이 적고, 많이 쌓는 방법이라는 주장은 사실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는 믿음이었을 뿐이다.

수학에서는 '참' 을 증명하는 것을 '정리' 라고 한다. 진리에 99% 진리라는 것이 없듯 99% 정리라는 것은 없다. 수학은 정확해야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1백% 완벽한 정리를 추구한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천재과학자 갈릴레오는 일찍이 "자연은 수학으로 기술되어 있다" 고 말했다.

이는 "자연은 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다" 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자연을 알기 위해서는 수학을 알아야 한다" 는 뜻으로도 들린다.

수학에는 오래된 미해결 문제들이 많다. 이러한 미해결 문제의 도전을 통해 수학자들은 수학과 과학을 발전시켜왔다.

'케플러의 예상' 도 부호.정보이론 등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수학자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오래된 미해결 문제가 수학자를 흥분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백,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천재들이 후대 인류의 지적 능력에 던지는 도전장이 아닌가.

최근 미국에서는 '2000년 세계 수학의 해' 를 기념해 중요한 미해결 문제 7개를 선정, 각 1백만달러씩 총 7백만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그 문제들 중 일부를 우리나라의 수학자가 해결해주길 기대해 본다.

김명환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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