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러시아 방문 때 신중한 행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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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방문의 주요 행사에서 사전에 참모들이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읽었다. 즉흥 발언에 따른 해프닝을 최소화하려는 새 모습을 보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의 공동회견 모두연설, 모스크바대 연설 등에서 거의 애드리브(즉흥 연설) 없이 원고를 낭독했다.

러시아 측 통역이 메모 없이 우리 측이 건넨 인쇄본 원고를 그대로 통역할 정도였다.

지난해 순방외교 때만 해도 노 대통령은 대부분 자유분방하게 연설을 하다 싱가포르 대통령 앞에서 갑자기 말문이 막혀 15초 동안 침묵이 흐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국가 간에 반드시 전해야 할 외교적 메시지가 빠지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강원국 연설비서관은 "취임 후 국내 문제 등으로 바빴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충분한 준비를 통해 할 얘기를 빠짐없이 집어넣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의 환대 이면에 기자단과 민간사절 등은 '크렘린 분위기'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1일 한.러 정상회담과 회견 취재차 크렘린 궁을 찾았던 기자단은 "통보받은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기관단총을 멘 경비병 한명에게 한시간 가까이 출입을 통제당했다. 각종 협정 서명에 참석해야 할 한국 측 대기업 대표, 모 언론사 사장 등도 45분 동안 발목이 잡혀 있어야 했다. 푸틴 대통령의 다음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회견에선 기자단과의 일문일답이 갑자기 취소됐지만 "크렘린 방식"이라는 말 외의 공식설명은 없었다.

방문국 영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도 화제였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부인과 부부관계가 다소 소원하다는 게 우리 측 관계자의 귀띔이다. 푸틴 대통령의 부인은 치통이 도져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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