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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모는 독일차, 위기의 F1에 메시아 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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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16면

굉음이 폭발하는 F1의 트랙. 경제 불황과 수퍼스타 부재 등으로 총체적 위기를 맞은 F1으로서는 미하엘 슈마허의 복귀가 복음과도 같은 희소식이다. [중앙포토]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F1 팬들에게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됐다.
‘F1의 살아있는 전설’ 미하엘 슈마허(40)가 24일(한국시간) 복귀를 선언했다. 2006년 말 은퇴한 슈마허는 내년 메르세데스의 머신을 몰고 레이싱 서킷으로 돌아온다. 그는 “2006년에 난 몹시 지쳐 있었다. 3년간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충분히 강해졌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복음 ‘슈마허가 돌아왔다’

F1의 광적인 팬들에게는 ‘성령의 부활’과도 같은 ‘복음’이다. F1의 세계만 놓고 보면 그는 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1994년과 95년 베네통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2000년부터 5년 연속 페라리의 붉은 머신을 타고 시즌 챔피언에 올랐다. 통산 일곱 번의 시즌 챔피언. F1 사상 최다 기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3년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단일 레이스 91회 우승 등 F1의 중요한 기록 중 상당수가 여전히 슈마허의 것으로 남아 있다.

독일의 대중지 빌트는 슈마허가 1년 계약으로 1000만 달러(118억원)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천문학적인 액수지만 그가 전성기 때 벌어들인 수입 8000만 달러(947억원)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스포츠 경기에서 그는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며 전세계 스포츠 스타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사내였다. 다시 그에게 그런 날이 올까.

미하엘 슈마허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F1의 환경은 머신의 스피드만큼이나 크게 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F1을 둘러싼 상황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F1의 팬들은 슈마허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 3년의 공백을 극복할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레이싱 산업의 관계자들은 슈마허가 정말로 F1의 메시아가 돼주길 갈망하고 있다.

스피드의 시대에서 효율의 시대로
일본의 자동차 기업 혼다는 지난해 F1에서 철수했다. 혼다가 어떤 기업인가. ‘기술의 혼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1948년 창업 이후 독창성과 기술 개발에 정열을 쏟아붓는 기업이다. 1962년에는 유럽팀 일색이던 F1에 아시아 팀으로는 처음 도전장을 던졌고, 1965년에는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F1 등 각종 자동차 경주대회 출전을 통해 쌓아올린 기술력은 혼다가 세계적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1950년 영국 실버스톤에서 열린 제1회 F1레이스도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는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엔진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강한 힘을 냈다. 극한의 스피드를 제어할 수 있는 브레이킹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타이어는 끈끈이주걱처럼 도로와 밀착해 차체에 안정감을 더했다. 코너를 돌 때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는 전자 제어장치가 생겼다. F1과 자동차 산업은 시너지 효과를 내며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시속 180㎞, 200㎞, 250㎞, 300㎞, 360㎞…. 어느 순간 머신은 더 이상 빨라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더 강한 엔진보다는 더 효율적인 엔진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오로지 달리기만을 위해 제작된 머신보다는 자동차 디자인과 마케팅이 더 중요한 새로운 시대.

빨라지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할 팀은 점점 줄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F1을 주최하는 포뮬러원매니지먼트(FOM)는 2007년부터 엔진 개발을 금지하고 연간 엔진 사용 개수도 제한했다. 시즌 중에는 테스트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한 해에 팀을 운영하는 데 4000억원 이상을 쓰는 구조가 이어져서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느껴서다.

더 빨리 달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팀을 유지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시작된 자동차 경주대회가 자기 모순에 빠진 셈이다. F1의 올드 팬들은 배기량도 크고 중저음의 배기음이 웅장했던 1990년대 자동차 경주 대회 때가 더 재미있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F1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경주는 마초(macho)의 향기가 짙은 스포츠지만 술과 담배 광고를 제한하는 나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말보로는 여전히 페라리를 후원하고 있지만 카멜과 마일드세븐 등 다른 담배 기업은 차체에 마음대로 브랜드 광고를 할 수 없는 F1을 떠났다. 게다가 국제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흑인 황제’ 루이스 해밀턴은 기대 밖
혼다에 이어 올해는 도요타가 F1을 떠났다. BMW는 동업을 했던 자우버에 지분의 80%를 넘기며 F1에서 발을 빼고 있다. F1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는 위기다.

짙은 어둠 속에서 F1에 한줄기 빛이 비췄다. 독일의 메르세데스가 F1에 출전키로 한 것이다. 지난해 시즌 챔피언인 브라운GP에 엔진을 공급했지만 이젠 F1 전면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혼다·도요타·BMW 등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한 메르세데스가 발탁한 드라이버가 다름 아닌 미하엘 슈마허다.

내년 3월 개막전을 치르지만 슈마허의 등장으로 F1은 아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슈마허는 3년이라는 공백을 딛고 예전처럼 냉정하고도 도전적으로 레이스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41세라는 나이를 극복하고 예전 같은 순발력과 민첩함을 보여줄 것인가. ‘F1의 검은 황제’라는 닉네임을 얻은 흑인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24)과의 승부는 과연 어떨 것인가. 은퇴 전부터 라이벌 관계였던 페르난도 알론소도 빼놓을 수 없다.

슈마허는 페라리를 몰던 시절 ‘이탈리아(페라리)의 뜨거운 심장(엔진)과 독일(슈마허)의 차가운 피는 찰떡궁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독일인이 모는 독일차는 얼마나 빨리 달릴지도 궁금하다.

슈마허가 다음 시즌에도 전성기에 버금가는 기량을 발휘한다면 그는 F1의 ‘수퍼 스타’가 될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 슈마허를 꺾는다면 그는 ‘새로운 황제’라는 훈장을 받을 것이다. 슈마허의 성적이 어떻게 되더라도 F1에 대한 팬들의 특별한 관심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슈마허가 잠시 활동하며 F1에 온기를 불어넣은 뒤 조만간 화려하게 막후로 사라져 F1의 메시아로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슈마허는 “메르세데스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며 이번 복귀가 1회성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년 10월 영암선 ‘F1 코리아 그랑프리’
슈마허의 복귀는 한국의 입장에서도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전라남도 영암에서는 내년 10월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열린다. F1이 점전적인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한국에까지 F1 그랑프리를 개최할 기회가 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2000년만 해도 F1 레이스 중에서 아시아권에서 열린 그랑프리는 일본과 말레이시아 두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바레인·아랍에미리트·싱가포르·중국·터키 등이 추가돼 아시아 7개국에서 F1이 열렸다. FOM이 아시아를 신흥시장으로 개척하고 있다.

영암의 레이싱 트랙은 내년 7월 완성된다. 트랙 건설에만 총 예산 3400억원이 투입됐다. 국고 지원도 900억원에 이른다. 국토의 균형적 발전과 낙후한 한국 모터레이싱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이다. 전라남도는 F1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도 유치하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코리아그랑프리 운영 법인인 KAVO의 정영조 대표는 “F1 그랑프리 개최가 국내 모터 레이싱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F1도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선 그는 슈마허가 메시아가 돼주길 갈망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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