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 이론, 왜 20년이나 발표 미뤘습니까”“19세기 초는 느긋하게 이론을 숙성시키던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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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호 08면

지난 2월 시작된 ‘21세기 다윈의 서재’가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총 20명의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해 다윈과 대담했다. 이 대담은 때로 e-메일·메신저·전화를 통하기도 했고, 서재뿐만 아니라 사원·미술관·강당에서도 진행되었다. 다윈은 원래 ‘다윈이 뽑은 올해의 과학책’으로 끝을 내려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좀 더 의미 있는 마무리를 원했다. 다윈의 만류에도, 우여곡절 끝에 『다윈 평전』의 공저자인 제임스 무어(영국 개방대학 과학사) 교수가 마지막 게스트로 초대됐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21세기 다윈의 서재<22.끝>-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의 『다윈 평전』

다윈=무어 선생,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만, 내 일대기를 쓴 사람을 초대하는 건 좀 민망한 일이에요. 민감하기도 하고요.

무어=선생님에 대한 평전을 쓴 사람으로서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군요.

다윈=거 봐요. 무어 선생을 모시면 내가 인터뷰를 당할 거라고 그랬죠? 이럴 줄 알았다니까. 허허.

무어=거두절미하고, 제일 중요한 질문부터 드릴게요. 저와 데스먼드 교수가 이 작업을 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선생님이 ‘왜 20년 동안 자연선택 이론을 발표하지 않았는가?’였습니다. 선생님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20년 전쯤인 1838년에 이미 그 이론을 마음속에 품고 계셨지 않습니까?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웟슨과 크릭은 경쟁 팀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기 위해 온갖 술수도 다 썼잖습니까? 과학에서는 누가 제일 먼저 했느냐가 목숨만큼이나 중요한데요, 선생님은 그 혁명적 이론을 20년 동안이나 품고 계셨단 말입니다. 왜 그러셨어요?

다윈=나 이거 참. 처음부터 세게 나오네. 음. 이왕 이렇게 됐으니 오늘 다 한번 얘기해 봅시다. 우선,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의 눈으로 보면 내 행동은 좀 이상하죠. 하지만 “출판하지 못하면 죽는다(publish or perish)”와 같은 문화가 과학계에서 보편화된 건 한 세기도 채 안 됩니다. 19세기 초·중반에는 나처럼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이론을 숙성시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요. 전문가 이상의 실력을 갖췄지만 단지 취미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무어=그러니까, 우선권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좀 모순적인데요. 선생님과 똑같은 이론을 제안한 월리스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것이 엄청난 도전과 자극이 되어 부랴부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일은 너무나 유명하지 않습니까?
다윈=나도 사람인데 ‘최초’라는 타이틀에 왜 욕심이 없었겠습니까? 사실, 월리스의 편지는 내게 엄청난 좌절이었죠. 지난 20년 동안 숙성시켜 온 내 이론을 요약한 것처럼 너무 명쾌했었거든요. 누군가 “2등은 영원히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그러던데, 월리스 선생은 엄격히 말하면 2등도 아니죠. 나와 공동 1등인 셈인데, 그의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아요. 그 친구에게 좀 미안해요.

무어=욕심은 있었지만, 20년 동안 발표를 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저희가 선생님이 쓰신 편지, 공책, 비밀 공책, 초고, 주석 등을 찾아내 분석을 해봤지요. 역사가들의 싸움은 어떤 기록(archive)을 봤느냐로 결판나는데,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참 고마운 분이에요. 거의 모든 기록을 고스란히 남기셨잖아요. 특히 편지는 1만4500통이나 남기셨더군요.

다윈=아마 평생 수만 통은 썼을 거요. 비글호 탐험을 끝내고 낙향하고 나서 하루에 한두 통은 썼던 것 같아요. 한 2000명 정도와 편지로 교류했던 것 같고. 전자메일이 있었다면, 하루에 수십 통은 썼을 텐데. 하하.

무어=1844년 어느 날, 후배 식물학자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고백을 하셨더군요. “나는 종이 불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하오(마치 살인을 자백하는 것 같구려).” 시골에 칩거하시면서 비밀 공책에 불온한 생각을 적어가셨지만, 파장이 두려워 20년 동안이나 발표를 미루신 것 아닙니까? 선생님의 이론이 국교회를 공격하던 급진파에 의해 악용되고, 선생님께서 무신자로 취급당하실까 봐 몸을 사리셨던 것 아닌가요? 저희는 급진주의자로 몰려 사회적 지위와 안락한 가족, 물려받은 풍부한 유산을 잃고 싶지 않은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사회적 초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다윈=그 대목에서 해명이 좀 필요합니다. 『다윈 평전』에서는, 내가 무슨 ‘이중생활’(내적으로는 필사적으로 진화론을 사수했지만 두려움 때문에 겉으로는 발표를 꺼린)을 한 것처럼 그려져 있던데, 꼭 ‘만들어진 다윈’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읽으면서 ‘대체 누구 얘길 하시는 건가?’라는 의문이 든 적도 있고요. 하하. 우선, “살인을 자백하는 심정”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곤란해요. 터놓고 지내는 후배에게 농담조로 말한 것뿐이거든요. 그리고 종이 변한다는 생각 자체는 당시에 파문당할 정도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죠. 게다가 나는 1859년 이전에도 내 이론의 요약본을 출간하려고 이리저리 모색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결정적으로 비글호 항해기를 업데이트하고 따개비에 대한 연구에 매달린 나머지 자연선택 이론에 천착하지 못했죠. 이게 출간이 늦어지게 된 진짜 이유예요.

무어=그렇다면, 고뇌가 깊어 20년 동안이나 이론을 숨겼다는 저희들의 해석은 틀렸다는 말씀이신가요?

다윈=“숨겼다”라는 표현이 좀 강하다는 얘기예요. 고뇌한 것도 맞고 20년 늦은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다윈 평전』은 지금까지 읽어본 내 전기들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탈맥락화된 천재나 위인이 아닌,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줬거든요. 그래서 당사자인 나도 크게 불편하거나 당혹스러운 점이 없었어요.

무어=이게 다 선생님이 메모지 한 장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신 덕분이에요. 그 기록을 들추며 선생님을 재구성하는 동안 저희들은 참 행복했답니다.

다윈=어쨌든 벌거벗은 느낌이에요. 21세기 다윈의 서재를 이렇게 마무리하게 한 제작진이 좀 얄밉네요. 그간 이 코너에서 소개된 과학책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내년에는 여러분의 서재에 더 훌륭한 과학책들이 더 많이 꽂혀 있길 기원합니다.

※‘2009년 다윈의 해’가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그간 ‘21세기 다윈의 서재’를 사랑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다윈의 식탁』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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