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판 '백제문화…' 낸 두 일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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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저는 주로 미국에서 거주하는 자유기고가입니다. 4년전 LA타임즈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르는 문양이 달린 백제 장식품을 보았는데 지금 그 생각뿐입니다. 경제적 형편이 되면 백제 탐방을 통한 글을 쓸 생각입니다"

1999년 10월, 일본 교토의 한 호텔. 손님인 아사노 히데오(淺野秀夫.54)와 호텔사장인 나마세 모토히코(生瀨元彦.43)가 우연히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아사노의 이 말을 들은 마나세는 눈이 번쩍뜨였다. "그러세요. 저는 아스카(飛鳥)는 백제의 왕국이었다고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백제에 관심이 있는 분을 만나 매우 반갑군요. 혹시 제가 당신의 백제 탐방기를 후원하면 안될까요. "

둘다 일본 국적이지만 아사노는 한국인으로 서울서 대학까지 다니다 34년전 일본으로 귀화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고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 올초 백제연구모임인 '백제문화연구회' 를 만들었다.

그 후 아사노는 4차례에 걸쳐 부여.공주지역을 찾아다니며 글 쓰는데 전념했고 나마세는 "백제문화를 세계에 제대로 알려야 한다" 는 생각에 아사노가 필요하다는 것이면 무조건 도왔다.

이르면 다음달 그들의 합작품인 백제문화 탐방기 '피닉스 라이즈' (Phoenix Rise.영문판)가 한림출판사에서 나온다. '불사조의 비상' 이란 뜻의 책 제목은 아사노가 백제장식품을 본 순간 받았던 느낌에서 따왔다.

우선 영문판을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 선보이고 한국어.일본어판은 나마세가 올 연말까지 출판사를 정해 내놓을 계획이다. 우연한 만남이 낳은 아름다운 결실이다.

책의 주제는 간명하다. '일본 아스카 문화는 백제의 문화' 라는 것. 그 과정을 실제 유물 비교와 현지 탐방기 그리고 1백장 가까운 사진 등을 통해 설명하며 아사노 특유의 환상적 글쓰기 기법이 가미된다. 백제문화만 다룬 영문 서적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소중한 성과다.

아스카 문화는 일본이 고대국가체제를 갖춘 6세기말~7세기 중엽, 쇼토쿠태자(聖德太子)시대의 문화. 사실상 당시 실권을 장악한 백제계에 의해 이룩된 백제 문화의 연장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나마세는 "일본에도 백제만에 관한 책은 거의 없어요. 자존심 때문에 백제의 실체를 알리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아사노의 책이 일본어로 번역되면 일본에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 말한다.

아사노는 96년 영국 만다린사에서 '미국의 아침식사' (An American Breakfast)를 펴내 국내에서 외서로는 드물게 6개월 동안 5백부 이상을 판매하며 이름을 알린 인물. 한국이름이 김윤섭인 그는 경희대 신방과 재학 중 바깥세상을 알고 싶은 열정에서 어머니의 일본인 친구 양자로 들어가는 '모험' 을 택했다.

어렵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여성과 결혼도 했지만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을 주무대로 글을 쓰고 있다.

나마세가 백제에 눈을 뜬 것은 고향 교토의 히라노(平野)신사에 모셔진 감무(桓武)천황이 백제계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후부터. 백제 관련 책을 탐독하며 그 관심을 키워왔다.

이 책을 펴낼 한림출판사는 6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소설.동화.요리 분야 영문판 2백여권을 내놓은 한국문화 영문판 전문출판사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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