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가 해결책 내놓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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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의 내부 갈등이 갈수록 복잡하게 얽히는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룹 경영권에 이어 현대자동차 계열분리 문제를 놓고 벌어진 형제간 신경전이 이번에는 현대-정부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왕자의 난' 과 현대 유동성 문제가 '3부자 동반퇴진' 과 정몽구 회장의 반발로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역(逆)계열분리' 란 희한한 발상이 동원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현대의 동일인(계열주)을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에서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으로 변경.통고함에 따라 현대의 '역계열분리' 시도는 원천봉쇄됐지만, 이로 인해 현대사태는 다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현대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현대의 신뢰는 물론 증시.금융권, 나아가서는 우리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시급한 수습이 요구된다.

정부는 鄭전명예회장 일가에 대해 "3부자 동반퇴진 약속을 지켜라" "현대자동차를 약속대로 계열에서 분리하라" 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어제도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과 전윤철(田允喆)공정거래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鄭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을 9.1%에서 3% 아래로 낮춰라" 고 요구했다.

물론 정부가 특정인에 대해 '오너 지분을 몇% 아래로 낮춰라' 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현대가 자초(自招)한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현대 계열사의 최근 사정 등을 감안할 때 계속 거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점에서 이제는 현대가 보다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현재 상황에서 현대의 선택폭은 크지 않다. 정부의 입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또 몽구-몽헌 형제간 이해관계도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공정위의 어제 결정으로 인해 자칫 현대자동차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줄다리기가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시장은 더이상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크라이슬러간 전략적 제휴 등으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현대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높지 않다.

많은 국내외 투자자는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잇따라 연출되고 있다.

어제 증시에서 바로 현대그룹 관련 주가가 하락세를 보인 것도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는 것은 현대를 위해서도,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3부자가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현대와 나라 경제는 물론 바로 자신들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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