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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2009년 10대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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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죽음과 갈등·폭력·자유, 그리고 성(性)’. 2009년에 일어난 사회 분야의 굵직한 사건사고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정치·경제·문화 분야 등을 배제하고 네티즌에게 올해 대한민국을 흔든 ‘큰 사건’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인터넷 투표는 본지 인터넷 사이트(joins.com)를 통해 지난 14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됐다. 유난히 사건이 많은 기축년(己丑年)이었지만 강호순과 조두순이 압도적 1·2위를 차지했다. 두 악인이 사회에 끼친 충격은 그만큼 컸다. 결과적으로 두 악인이 올해 대한민국을 가장 많이 바꿨고, 사회의 변화를 낳았다. 용산 농성자 사망사건과 쌍용차 공장 점거, 장자연 리스트 등에도 많은 표가 몰렸다.

장주영·정선언·김효은 기자

참혹하게 간 딸 … 가족들은 두려워 이름도 부를 수 없다

강호순
부녀자 7명 살해 … 흉악범 얼굴 공개하게 법 바뀌어

성당 가는 길에 사라진 큰딸(당시 20세)은 2년 만에 차가운 뼛조각으로 돌아왔다. 올 1월 경기도 수원시 호매실동 하천가에서 연쇄살인범 강호순(39)이 암매장한 딸의 시신을 찾은 것이다. 그로부터 10개월여가 지났지만, 아버지 연모(54)씨의 상처는 줄어들지 않았다.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가족은 말이 줄어들었어요. 큰딸이 떠오를까봐 얘기를 꺼내는 것도 두려워요.”

올 1월 말 경찰에 붙잡힌 강호순. 그는 모두 7명의 부녀자를 살해했다. 2005년 그가 지른 불로 숨진 부인·장모를 제외하고서다. 끔찍한 범행에 오열했던 유가족들은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다. 지난해 말 피해를 당한 군포 여대생 안모(당시 21세)씨의 가족들은 막내딸을 잃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아버지는 올봄 초기암 진단을 받았다.

딸의 학비를 마련하려고 모국에 왔다가 변을 당한 중국동포 김모(당시 37세)씨의 어머니와 남동생은 네댓 차례 한국을 찾았다. 김씨가 암매장된 곳은 골프장으로 바뀌어 시신도 찾지 못했다. 정부에서 나온 위로금은 고작 200만원. 보다 못해 안산지청에서 막 퇴임한 구본민 변호사가 체류비를 지원해줬지만,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씨의 어머니는 “사춘기인 손녀딸에겐 아직 엄마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이다”고 지인들에게 털어놨다고 한다.

피해자 일곱 가족은 지난 4월 강을 상대로 13억여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다. 하지만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강의 재산은 애초 7억5000만원대로 알려졌지만, 판결이 확정된 뒤 조회해 본 재산은 이에 크게 못 미쳤다. “2억5000만원이 들어 있다”고 알려졌던 통장은 잔액이 0원이었다. 살던 집과 축사의 건물주는 “강과 직접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어서 전세금을 내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사 소송을 대리한 양진영 변호사(법무법인 온누리)는 “강호순 소유의 상가가 곧 경매에 부쳐지는데, 강의 악명 때문에 유찰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 가족에 최소 1억원씩을 찾아 드리겠다는 계획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사건 뒤엔 역설적인 희망도 싹텄다. 본지가 주도한 유전자 신원확인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고, 법무부는 내년 업무 계획에서 흉악범의 얼굴을 수사 단계에서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경찰은 CCTV(폐쇄회로TV)를 확충하는 등 도시설계 과정에서 범죄 요소를 차단하는 범죄예방환경설계 를 2015년까지 전국 모든 주거지역에 도입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이진주 기자

조두순
나영이 일기엔 “내일 법정서 범인 봤을 때 허걱!”

나영이 아버지는 “딸 아이가 이만큼 회복하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물어 가는 몸의 흉터 말고도 치유할 상처는 더 있었다. 수사와 재판 때 남은 ‘마음의 병’이었다. 아버지가 기자 옆에 앉은 나영이에게 물었다. “검찰에 가서 몇 번이나 진술했지?” 나영이는 “네 번, 하나는 반 번”이라고 답했다. ‘반 번’은 조사받다 중단했다는 뜻이었다. 또렷하게 각인된 진술 악몽을 떠올리자 나영이 표정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지난 7월의 항소심 전날, 나영이는 걱정하며 물었다고 한다. “아빠, 그 사람(조두순) 보면 어떡해?” 그날 밤 나영이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내일은 법정에 가는 날이다. 가서 범인 봤을 때, 허걱!’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나영이가 진술하는 모습을, 아버지는 멀리서 지켜봐야 했다.

지난 1년간 나영이와 아버지는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 안산의 집과 서울 신촌의 병원을 오갔다. 나영이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늘 “피곤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을 등에 업을 수 없었다. 배에 수술을 한 데다 배변 백까지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몇 달 전 15년 된 중고차 한 대를 샀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조두순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사회적 변화로 이어졌다. 법원은 아동 성폭행범에게 더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성폭행 피해 아동들을 위한 기금이 조성됐고, 의사들도 ‘의료 기동반’을 꾸려 사건 현장에 의사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나영이네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아버지는 “우리 딸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이 소송을 통해 수사 관행이나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용산
철거민 유족들 11개월째 집회 중

1월 19일 서울 용산구 재개발지역의 남일당빌딩 옥상에 망루가 설치됐다. 철거에 반대하는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원들은 그곳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농성을 벌였다. 다음 날인 20일 오전 6시40분쯤, 경찰특공대가 망루에 투입됐다. 망루엔 시너통과 가정용 LPG통 등이 있었다. 경찰의 작전이 시작되고 30분쯤 후, 망루에서 불이 났다. 경찰 1명과 농성자 5명이 사망했다. 사건 발생 9개월 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와 전국철거민연합회 간부 김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11개월이 지났지만 갈등은 아직 진행형이다. 사망자 장례식은 치러지지 않고 있다. 사건 현장에선 아직도 매일 밤 집회가 열린다. 이 사건으로 재개발 정책이 사회적 논란이 됐다.

쌍용차
노조, 볼트 쏘며 77일 공장 점거

올 여름 쌍용자동차 노조는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펼쳤다. 사측이 직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으나 노조가 이를 거부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는 다연발 볼트 총, 대형 표창 등 ‘사제 무기’를 사용해 경찰과 맞섰다. 경찰은 헬기를 동원, 최루액을 살포했다. 점거 농성자와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자는 직원 간 충돌도 이어졌다. 노조와 사측은 극적인 협상 타결을 이뤘지만 생존이라는 숙제가 남았다. 이에 노조도 9월 상급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투표자의 73.1%가 탈퇴를 지지했다. 존속과 청산의 기로에 서 있던 쌍용차는 지난 17일 법원이 ‘회생 계획안’을 강제 인가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쌍용차의 생존을 위한 분투는 회생안 시한인 2019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①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 최근 그린 그림. 아기새가 엄마새에게 밝은 표정으로 선물을 건넨다.
② 지난 여름 치료를 받던 나영이는 성폭행범 조두순이 감옥에 갇힌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두 그림을 비교한 주치의 신의진 교수는 “남에게 뭔가 주는 그림은 아이의 상처가 회복됐다는 뚜렷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③8월 3일 경기도 평택의 쌍용차 공장에서 경찰과 대치한 노조원이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④6명이 불에 타 숨진 서울 용산의 남일당 빌딩 현장에서 10월 12일 재판부와 검찰·변호인 등이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⑤ 유력 인사 접대를 강요당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장자연씨의 영정 사진.
⑥7월 10일 한국정보보호진흥원 보안요원들이 7·7 사이버 테러의 피해 사례를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자연
유력인사 접대 리스트 나돌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했던 장자연(29)씨가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곧 장씨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장자연 문건’이 공개됐다. 소속사 전 대표 김모(40)씨로부터 유력인사 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문건에는 언론과 금융계 인사들이 실명으로 등장했다. 소위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들이 경찰 수사를 받았다. 수사 대상자는 20명이 넘었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소속사 전 대표 김씨와 전 매니저 유모(29)씨만 기소됐다. 이 사건은 소속사와 연예인의 불평등 관계, 연예계의 씁쓸한 현실을 부각시키는 데 물꼬를 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월 기획사와 연기자의 전속계약 기간이 7년을 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표준계약서를 내놓았다.

서울광장
집회 막으려 버스로 벽 둘러쳐

참여연대 등이 참여한 ‘서울시민 캠페인단’은 최근 서울광장 사용을 사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조례 개정안 발의 서명운동’을 완료했다.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건 5월부터였다. 경찰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추모 인파가 모였던 5월 23일부터 12일간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서울광장에 차벽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문화행사와 여가 선용에 쓰여야 한다’는 조례를 들어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광장의 의미’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됐다. 이후 봉쇄를 반대하는 이들은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인 서울광장의 사용 절차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시와 경찰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문화공간인 광장이 이념단체의 불법집회 장소로 변질됐다”고 반박했다.

미네르바
경제 뒤흔든 사이버 논객 … 무죄

1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지난해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했다며 ‘사이버 경제 대통령’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경제학을 독학한 무직자 박대성(31·사진)씨였다. 박씨는 4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검찰이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최근 『미네르바 생존경제학』이란 책을 내고, TV ·강연회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제도권 지식인의 한계,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관계, 학벌 사회의 편견 등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

집단 자살
인터넷 카페서 모여 12명 자살

4월 강원도엔 ‘집단 자살의 공포’가 엄습했다. 8일 정선, 15일 횡성, 17일 인제, 23일 양구에서 다섯 번에 걸쳐 남녀 21명이 집단자살을 시도했다. 그중 12명이 숨졌다. 집단 자살을 시도한 이들은 인터넷 자살 카페를 통해 만났다. 사건의 중심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만들어진 자살카페 ‘同伴自殺(동반자살, 카페주소 suicide04)’이 있었다. 개설자는 70대 할머니와 함께 살며 인터넷만 하는 고립된 21세 청년이었다. 그는 5월 초 경찰에 구속됐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락하고 만나 죽어간 사건은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다. 카페 개설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많이 죽어나갈 줄 몰랐다. 자살한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선진국보다 높은 한국의 자살률이 이슈화되기도 했다.

루저
외모 지상주의 논란 부른 한마디

“키 1m80cm 이하는 루저(loser·패배자).” KBS 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여대생의 발언이 하반기 한국 사회를 달궜다. 네티즌들은 그 여대생을 ‘루저녀’라 부르며, 그의 신상정보를 낱낱이 공개했다. 이른바 ‘루저의 난’이다. 재학 중이던 여대생은 학교를 결석하고 주변과 연락을 끊었다. 학교 관계자는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한 후에는 연락이 안 된다” 고 전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신상털기(검색만으로 신상정보 파헤치기)’가 오프라인까지 이어져 한 개인의 사회생활을 마비시킨 셈이다. 이 사건은 그동안 여성의 외모를 희화하는 것에는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다. 또 외모 지상주의(또는 콤플렉스)가 얼마나 사회에 깊게 뿌리 내렸는지 보여줬다.

사이버 테러
한·미 26개 기관 동시 해킹당해

7월 7일, 청와대·국방부 홈페이지 등 한국과 미국에 있는 26개 주요 기관의 인터넷 사이트가 동시에 해킹을 당해 마비됐다. 비정상적으로 접속건수(트래픽)를 늘려 사이트를 마비시키는 ‘디도스(DDoS)’ 공격이었다. 악성 코드에 감염된 수만 대의 ‘좀비 PC’는 주요 기관의 인터넷 사이트를 일제히 공격해 마비시켰다. 일반인의 컴퓨터가 자기도 모르게 악성코드에 감염돼 공격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을 안겨줬다. 디도스 공격은 오래된 해킹 수법이었지만, 대부분의 기관은 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7·7 사이버테러’로 명명된 이 사건은 ‘디지털 사회’의 그림자를 드러냈다. 사건 발생 4개월 후, 국가정보원은 디도스 공격에 동원된 서버의 IP(주소)가 북한 체신청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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